, 아예 이경규에게 맡겨라

2012-07-02     김교석


- <남자의 자격>, 떠나간 아저씨들이 돌아와야 산다
- 시즌제 도입보다 중요한 것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부진의 늪에 빠진 <남자의 자격>이 개편된다. 그 변화폭도 대대적이다. 우선 담당PD가 교체되고, 관계자에 따르면 시즌제 형식을 차용해 시즌2를 출범시킬 계획으로 알려졌다. 출연진도 손을 보는데 보도된 바로는, 중간에 들어온 양준혁, 전현무가 빠지는 것으로 결정됐고, 탤런트 주상욱의 합류가 확정됐다. 원년멤버 윤형빈의 거취를 비롯한 새 멤버 영입은 조만간 확정할 계획이라 한다. 계속되는 시청률 하락세, 웃음과 감동의 질 저하를 볼 때 변화가 불가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보도되는 개편방향을 보면 <남자의 자격>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무엇이 장점인지 새로운 제작진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심지어 ‘합창’ 미션을 또다시 준비할 거라는 기사도 보인다. 성급한 오보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붐의 끝물에 몸을 실은 <남자의 자격>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저씨 콘셉트로 자리를 잡았다. 한 살은 더 먹고, 한 발은 늦고, 한 걸음은 밀려나 버린 듯한 포즈. 이러한 포즈와 콘셉트는 다행히 다른 프로그램이 가질 수 없는 정서, 즉 공감과 일상의 위로라는 코드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한 세대를 호령했으나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버린 이경규의 부활은 그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최근 방송을 보면 프로그램의 상징과도 같은 이경규의 활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도 다른 멤버와 똑같은 그냥 한 명의 출연진 정도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김태원이나 김국진 또한 마찬가지로 역할이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부진의 책임을 윤형빈 등에게 씌우는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지금 <남자의 자격>에서 실종된 것을 꼽아보자면, 멤버간의 시너지, 아저씨 정서, 공감, 웃음, 그리고 (여러 의미에서의)성장이다. 다시 말해 총체적인 난국이다. 기획의도가 중년 아저씨들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에 도전하는 좌충우돌 성장기라 봤을 때 프로그램 자체의 구조적 결함인 셈이다. 최근 방영한 ‘김국진 소개팅’ ‘한 점의 승부’ ‘일손 돕기’ 모두 멤버간의 시너지는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웃음은 산만하게 흩어졌으며 이름만 달랐지 ‘라면의 달인’이나 ‘귀농 일기’ 등의 아류 격인 재탕이었다.

여기서 아이디어 고갈 보다 더 큰 문제가 드러난다. 이 미션들은 멤버들의 관계망 속에서 나와야 할 웃음과 감동을 구조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멤버들은 마치 저녁 6시 프로그램의 리포터처럼 스튜디오에 모여 각자 자기 파트만 전달하는 것 같다. 덕분에 멤버간의 단합과 관계망의 단절은 심화되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들이 함께 있어도 심심해 보인다.

<남자의 자격> 원년멤버의 구성은 탁월했다. 지는 해 취급을 받던 이경규, 김국진, 이윤석과 예능 초짜 김태원, 김성민, 이정진, 윤형빈의 조합은 아저씨라는 정서 하에 대동단결하여 예상 밖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이경규와 김국진이 티격태격하면서 웃음의 줄기를 만들고, 시대의 흐름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다가 시대의 덕을 보기 시작한 김태원과 그동안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인물 김성민은 에이스이자 분위기 반전 조커로 활약했다.

상대적으로 그들이 얼마나 수준이하임을 보여주는 이정진과 윤형빈은 청년 입장에서 부족한 중년들을 대상화하는 눈이자 세력의 흐름을 좌우하는 추가 됐다. 그러니 이들이 모여 있는 장면 자체가 하나의 그림이 되었고, 각자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 속에서 웃음과 감동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미션의 수행도 수행이지만 웃음은 멤버간의 관계망 속에서 일차적으로 파생되어야 하는데 리포터처럼 각자 행동하는 바람에 이경규는 유재석과 강호동처럼 멤버들을 조율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듬직한 진국 시골총각 양준혁, 밉상 전현무 등 각자 수식할만한 캐릭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김성민처럼 스스로 웃음을 제조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함께 도전한다거나 성장하는 상황이 없다보니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웃음이나 역할을 만들어야 빛이 나는 이윤석, 윤형빈과 전현무의 처지는 애매해졌다. 그런데도 멤버가 문제라면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경규, 김태원 쪽에 더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경쟁 프로그램인 SBS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남자의 자격>이 갖춰야 할 자격을 몸소 보여준다. 김병만이 구조를 만들고 추성훈, 박시은, 리키, 노우진, 황광희 등이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수식할 수 있는 캐릭터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보다 뭉쳐 있는 관계 속에서 생기는 역할을 각자 찾고, 충실히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캐릭터를 잡는다. 기획 의도나 배경은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지만 김병만의 리더십과 <정글의 법칙>의 승승장구는 현재 <남자의 자격>의 난맥상을 돌파할 힌트가 될 만하다.

지난 1월 <남자의 자격>은 일종의 정신감정 특집인 ‘남자, 중년의 사춘기’ 특집을 방영했다.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여러 행동관찰 실험 중에 프로그램 개편과 멤버 교체에 대한 통보 상황을 몰래카메라로 꾸며 멤버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코너가 있었다. 그때 이경규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처음 시작한 출연진 그대로가 아니면 기획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만약 멤버에 변화를 줘야 한다면 자신은 함께할 수 없다고. 스스로 부진하긴 하지만 <남자의 자격>의 장점과 차별성이 무엇인지 이경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의 부활 및 재도약과 동기화되어 있다. 이경규의 원맨쇼라는 의미가 아니라 <남자의 자격>이 그 어떤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쇼’가 아닌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시청자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리산을 오르거나 마라톤에 도전하거나 직장인 밴드를 결성하는 등 멤버들 각자가 각개전투를 펼치면서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남자의 자격>만의 진행방식이었다.

성공과 책임에 억눌려온 어깨를 잠시나마 가볍게 하고 인생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바로 <남자의 자격>을 지지한 아저씨 정서의 근간이다. 그런데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시즌제를 도입해 멤버를 갈아엎는다면, 기획 의도는 물론이요, 사랑받을 수 있었던 따스했던 감성과 위로와 공감의 정서를 부정하는 셈이다. 이경규의 고백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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