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 시트콤을 능가하는 해학 사극의 진수
2011-03-30 정덕현
- ‘짝패’ 김명수, 해학 사극의 진수를 선보이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짝패'의 스토리는 팽팽한 느낌이 별로 없다. 확연한 대결구도가 보이질 않고 주인공들이 넘어서야할 악역도 눈에 띄질 않는다. 지금껏 퓨전사극들이 미션 형식으로 긴박하게 인물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왔던 것과 비교하면 밋밋한 느낌마저 있다. 하지만 이 밋밋한 느낌마저 주는 '짝패'를 바라보게 만드는 요소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사극만이 가진 민초들의 진솔한 모습들이 연출해내는 해학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돈으로 관직을 사서 현감 자리에 올라서 패악질을 일삼다가 결국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 백수건달로 전락한 전직 사또(김명수)다. 노름에 빠져 "두 냥만"을 구걸하며 다니는 그가 그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종살이를 하고 있는 삼월(이지수)이를 걸고 한량인 조선달(정찬)과 노름을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노름의 대상이 된 삼월은 여기서 오히려 전직 사또보다 조선달이 이기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역전된 상황에 울그락 불그락하는 사또의 모습이 가관이다.
어쩌다 보니 아이까지 갖게 만든 전직 사또가 본가인 김진사댁으로 도망친 삼월이를 데리고 오는 장면 역시 압권이다. 겉보기에는 전직 사또가 삼월이를 겁탈한 것처럼 보여졌지만, 여기에 대해 전직 사또는 "비오는 날 이불 속으로 뛰어든 건 바로 너"라고 말함으로써 상황을 반전시켰다. 즉 전직 사또와 삼월이는 주종관계지만 어찌 보면 삼월이가 전직 사또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연출된 것. 여기에 전직 사또를 연기하는 김명수의 시침 뚝 떼며 그래도 양반이라는 식의 어투나 "참기름은 챙겨 왔냐"고 삼월에게 묻는 대사는 그 어느 시트콤이나 코미디에서도 느끼지 못할 해학을 전해준다.
거지 왕초 부부지만 이제는 천둥의 상단에서 일을 하게 된 장꼭지(이문식)와 자근년(안연홍)이 연출하는 웃음도 빼놓을 수 없다. 평생을 도둑질로 살아온 터에 상단 어디서나 보이는 '도둑질 할 만한 것들' 앞에서 갈등하며 주문을 외우는 모습은 이 사극이 가진 해학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복수에 나서는 장꼭지가 아들이 남긴 총으로 마치 서부극의 대결장면을 연상시키는 폼을 잡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간간이 등장하지만 진중한 존재감을 보이는 큰년(서이숙) 역시 압권이다. 은근히 쇠돌(정인기)을 좋아하는 그녀가 엉덩이를 밀착해오며 그를 유혹하는 장면이나, 에둘러 툭툭 던지면서 사실은 상대방을 꼬집는 특유의 대사는 감칠맛이 난다. 세상을 달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는 황노인(임현식)이나, 그 어떤 조직에서도 배척받는 귀동(이상윤)에게 "서로들 나를 끌어가려 안달"이라고 스스로 공치사를 하는 공포교(공형진)도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그런데 이 해학의 근원을 들여다보면 그저 웃음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난다. 뭔가 부족하고 늘 당하고 망가지는 이 낮은 자들은 그러면서도 특유의 해학으로 이 힘겨운 나날들을 버티고 있다는 느낌. 이 사극의 메인 줄거리는 물론 천둥과 귀동 그리고 동녀(한지혜) 같은 메인 인물들의 계속해서 뒤바뀌는 운명에서 나오지만, 그 팽팽한 운명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주변에 배치된 민초들의 허허로운 웃음과 눈물로 버무려진 해학이 이 사극의 또 다른 축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긴장감보다 해학이 돋보이는 '짝패'. 사극의 새로운 재미의 발견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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