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 논란’ 류승범, 누구의 심기를 건드렸길래…
2011-04-03 듀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류승범 태도 논란’이 포털 실시간 검색에 올랐다. 뭐였더라? 분명 나도 얼마 전에 [수상한 고객들] 언론 시사회에 갔었는데? 하긴 류승범이 조금 멍해 보이긴 했다. 자기도 “오늘 영화를 처음 봐서 멍한 상태다”라고 말하긴 했고. 대답도 단답형이긴 했다. 일단 류승범이 “멍하다”를 알리바이로 세우자, 다른 배우들도 그걸 알리바이로 쓰는 게 조금 재미있긴 했다. 그런 게 이런 게 논란이 될 만한 거였나? 글쎄다.
그래도 시끄러워지자 소속사에서 진화에 나선다. 답변에 따르면 류승범은 좀 늦게 시작한 배급시사회를 보다가 영화를 다 보지 못한 채 언론 시사회의 간담회에 참석해야 했단다. 그렇다면 답변이 힘들 수도 있겠다. 배급사에서는 “기존 본인이 생각했던 그림과 막상 영화를 통해 확인한 이미지가 달라 좀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같다”라고 한다. 하긴 [수상한 고객들]이 슬랩스틱 코미디와 컴컴한 신파가 마구 뒤섞여 있는 영화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어느 정도까지 진짜인지 몰라도 내가 이 변명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둘 다 그럴 법한 이야기이고, 그 정도면 나는 충분하다.
솔직히 난 그런 변명 듣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당사자가 자신이 지금 멍한 상태이고 충분히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거다. 왜 그 말을 믿지 말아야 하나. 언론 시사회라는 것의 스케줄이 원래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고 배우들 역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간담회에 참석하는 일도 흔하다. 그건 기자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어차피 앞으로 인터뷰들이 잡혀 있으니, 배우가 그 때 자기 생각을 정리해서 내놓겠다고 말한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언론 시사회 끝난 뒤에 하는 기자 간담회라는 게 그렇게 심각한 대화가 오가는 자리도 아니다. 이런 간담회에 참석해 본 사람들은 대충 그곳 분위기가 어떤 지 알 것이다. 앞줄에서는 제발 찍지 말라는 데도 배우들이 눈이 멀어라 플래시를 터트려대고, 진행자가 질문 시작하라고 부탁해도, 기자들은 1,2분 동안 멍하니 딴 짓이나 하고 있고, 간신히 나오는 질문들은 대부분 의욕 없고 싱겁다. 그러는 동안 포털에는 ‘아무개의 이기적인 각선미’나 ‘아무개의 숨 막히는 뒤태’라는 제목을 단 사진들이 실시간으로 꾸준히 올라오고 있고. 솔직히 배우나 감독들이 참석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적대감을 품어도 이상할 것 없는 분위기인 거다. 그렇다고 류승범이 이들에게 매번 그런 ‘멍한’ 태도를 보였던 것도 아니다. 그날만 어쩌다 보니 그랬던 거다.
그런데도 ‘류승범 태도 논란’은 포털을 점령한다. 마치 대죄라도 진 것 같다. 특히 인터넷 사용자들의 댓글들을 인용하며 “영화 완성도까지 입방아”라고 토를 다는 건, 사과를 하지 않으면 홍보에 초를 치겠다는 말로까지 들린다. 괴상하지 않나? 간담회 기사를 쓸 정도라면 이미 영화를 봤을 거고, 그렇다면 보지 않은 네티즌의 말을 인용하며 영화의 질을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암만 생각해도 이 기사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류승범이 ‘우리에게’ 무례했다. 그 때문에 ‘우리가’ 화가 났다. 제발 악플 달아 줘.”
익숙한 광경이긴 하다. 전형적으로 ‘동방예의지국’스러운 소동이기도 하다. 얼핏 아름답게 들릴지 몰라도, 대한민국이라는 ‘동방예의지국’에 산다는 건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엄격하게 짜인 상하구조 속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말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다들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세우며 살다가 성격 나쁜 늙은이가 되어 예상 수명 4,5년을 깎아먹고 일찍 간다. 그리고 그런 흐름이 이번 간담회에도 반영이 된 거다. 까짓 거, 이해는 간다.
그러나 아무리 문화적 특수성이 있다고 해도 세상에는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다. 시사회가 있었다. 기자 간담회가 있었다. 그럼 중요한 건 일단 영화이고, 그 다음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견이다. 아마 그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뉴스는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태도에 화가 났다”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정보이다. ‘우리’는 뉴스의 주인공으로 간담회에 간 게 아니다. 그런 걸 굳이 알려서 무얼 하겠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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