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드러난 의 저력
2012-10-08 김교석
- 두 개의 심장, <무도>의 엔진이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라디오스타 세트는 기회의 땅이었다. ‘행쇼’는 예전 ‘라디오스타’가 ‘무릎팍도사’ 옆에서 근근이 셋방살이 할 때처럼 단 십여 분 전파를 탔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끔 5분도 채 방송 안 되는 ‘라디오스타’에 환호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라디오스타 세트를 빌려 진행한 막간극이자 <무한도전>의 새로운 캐릭터 쇼, 유재석TV ‘행쇼’는 최고의 스타 GD가 게스트로 열연한 전통의 ‘무한상사’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심장이 두 개인 사나이, 하이브리드 샘이 솟아 리오 레이비. 바로 하하가 있었다.
<무한도전>은 과도기를 겪고 있다. 오늘날 예능 프로그램은 하나의 생명체와 비슷하다. 특히 감정을 교류하고 친근함의 정서를 무기로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호흡이란 멤버간의 시너지와 함께 성장해온 시청자와의 친밀도를 포함하는데, <무도>의 호흡은 한창 때에 비하면 꽤나 서걱거리고 있다. 물론 이는 파업만의 문제는 아니요, <무도>라는 캐릭터쇼의 캐릭터들의 매력이 이미 정점에 다다랐거나 찍고 내려가는 중에 파업이 진행되면서 그 정도를 더욱 심화했다고 볼 수 있다.
박명수는 여전히 맥락 없이 호통치고 뜬금없이 굴지만 그 자체가 익숙해져서 예전만 못하고, 정준하는 정총무로 단발 히트를 치면서 비호감 이미지를 씻었으나 그 후론 길 덕분에 관심밖에 밀려 있는 상황이다. 2010년 미존개오로 화려하게 수직상승한 정형돈은 자신의 비중과 등급 자체를 높이긴 했지만 아직 거기에 머물고 있다. 유재석은 어쩌면 QPR로 옮긴 박지성과 비슷한 포지션과 폼을 보여주고 있고, 길은 가족주의 차원에서 감정이입의 매개 역할 이상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노홍철은 사기꾼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누군가에겐 두발 자유화의 표상인 새로운 비주얼을 선보였지만, 가장 피곤해 보인다.
거듭 말하지만 모자란 남자들의 도전기는 어느덧 성공기가 되었다. 이후 대중의 반응에 적극적인 메시지로 화답하는 ‘가족주의’와 함께 여학생의 인기를 얻는 데 눈을 뜬 고딩 남학생의 태도로 비유할만한 감동코드의 반복은 이 캐릭터쇼가 정점에 다다랐다는 증거였다. 잃을 게 없는 태도로 인기를 얻은 <무도>의 캐릭터는 끝까지 모자라야 하고, 끝까지 사랑스러워야 했다.
허나 숱하게 반복 된 감정 코드와 대중 반응에 탐닉하는 포즈는, 이미 너무 많이 가진 자의 그 무엇이 되었다. 이 쇼는 과거처럼 풍부한 캐릭터가 맥락 속에서 탄생하고 이어지도록 다른 출구를 찾을 필요가 있어 보였고, 실제로 파업 후 캐릭터간의 사건과 사고를 불러일으킬 에피소드들을 집중적으로 기획해 배치한 것을 보면 제작진도 실제 꽤나 부지런히 이 캐릭터쇼의 새로운 동력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이 와중에 자신의 캐릭터를 지키면서, 멤버들에게 웃음의 고리를 걸었던 멤버가 바로 하하다. 파업 중에도 <런닝맨> 활동을 통해 감을 유지했던 그는 상꼬마에서 하로로로, 예전 'X맨'의 댄싱머신에서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소제, 그리고 레게 듀오 스컬&하하까지 자신의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쳤다. 심지어는 그런 그의 캐릭터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결혼발표도 꼬마신랑 콘셉트로 소화해냈다.
하하가 만드는 캐릭터의 세계는 자신의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친숙함이 바로 하하 캐릭터가 갖고 있는 최대 매력이다. 아이는 난장을 피워도 결국 귀여운 존재이고 그 누구나 아동, 청소년기는 있기 마련이니까. 신봉선의 말을 빌리자면 교내 락밴드 보컬의 어설픈 허세가 잔뜩 묻어나는 하이브리드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오디션쇼 예선장이나 웹툰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은 어설프면서 허세 가득한 하이브리드는 사회 이슈 중 학원폭력에 가장 관심이 많고, 언제나 두발자유화를 외치며, 오디션 도전곡은 10년도 훌쩍 지난 <전사의 후예>다.
아이 캐릭터니까 그렇겠지만 군 입대 전부터 극심한 자기성애자였으며, 축약어를 주로 쓰는 신세대라 그런지 대화의 맥락은 관심 없다. 겉으로 보면 커튼 머리를 한 병맛 캐릭터이지만 추억이나 현재의 시점에서 봤을 때, 진한 병맛의 기운 아래에는 ‘마니또’ ‘아나바다’ ‘학원폭력’ ‘오디션’ 등에서 피어오르는 공감의 정서가 은폐되어 깔려 있다.
하이브리드는 하로로에서 오디션쇼에 관심 많은 청소년 캐릭터로 변화한 것이지만 뭐 어쨌든 엄마나 학교의 틀은 벗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성장은 아니다. 하이브리드는 한마디로 떼쓰는 7살 꼬마아이에서 모든 세상을 자기중심으로 해석하는 중2병 환자의 성향이 덧입혔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만남이 놀랍게도 콜라에 맨토스를 빠트린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놀라운 실험을 할 수 있고, 발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바로 <무도>의 저력이다.
실제 단 10여분 방송된 ‘행쇼’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인 건 새로움이라기보다 반가움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무도>에 갖는 ‘기대’를 충족시켜준 것이다. <무도> 멤버들이 그동안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면서 만들어낸 캐릭터들은 그 어떤 것도 먼저 세팅하고 시작된 것이 없다. 길고 긴 맥락 속에서 우연히 탄생하거나 형성된 것이다.
‘행쇼’가 우리 눈에 번뜩이는 건 하이브리드의 촌철살인(요즘 말로 하면 드립)이 워낙에 어처구니없어서 웃긴 것도 있지만 캐릭터 간의 화학작용의 불씨가 나올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친환경 자동차 시장이란 새로운 장을 열었듯이 하하의 새 캐릭터에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는 건 <무도>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그 웃음 속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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