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도 장쯔이도 도무지 섹시하지 않다
2012-10-25 신주진
- <위험한 관계>, 세기의 스캔들은 어디로 갔나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영화화된 로맨스의 고전, 라클로의 서간체소설 <위험한 관계>에서 주인공인 호색한 발몽 자작은 그의 영혼의 파트너 메르테유 후작부인에게 자신이 새로 공략하는 투르벨 부인에 대해 말한다. “아! 그녀가 항복하기를, 하지만 싸워주기를 나는 바랍니다. 나를 패배시킬 힘은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나에게 대항할 힘은 갖고 있기를, 그리고 자신의 무력함을 천천히 맛본 다음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게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발견한 사슴을 매복해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은 비겁한 밀렵꾼이 하는 짓이고, 진정한 사냥꾼은 궁지에 몰아 사로잡는 법이지요.”
진정한 사냥꾼을 자처하는 발몽이 여자를 사로잡는 방법, 이것은 사랑의 밀당(밀고당기기)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서술로서 로맨스의 핵심을 드러내준다. ‘지배’와 ‘복속/저항’이라는 긴장. 저항이라는 계기가 없다면 그 사랑은 쟁취해야할 의미도 가치도 없을 테니까. 그/녀를 지배하기를 바라나 그렇게 쉽게 넘어오지는 않기를. 그/녀가 종국에는 나에게 패배하더라도 계속 거부하고 저항해주기를.
물론 정숙한 투르벨 부인에 대한 발몽의 공략에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메르테유 부인이라는 절대적인 제 3자의 시선이 있다. 모든 것을 주재하고 통제하는 그녀의 시선이 없다면 발몽의 모험과 도전은 그토록 신이 나지도 흥이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위험한 관계>는 이러한 세 남녀의 꼬이고 비틀린 사랑의 역학을 1930년대 상하이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펼쳐놓는다. 상하이 최고 바람둥이 갑부인 셰이판(장동건), 돈과 권력을 쥔 요부 모지에위(장백지), 정숙한 미망인 뚜펀위(장쯔이), 세 사람이 벌이는 유혹과 저항, 배신과 복수의 드라마이다.
배경, 세트, 배우 모두 더 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매끈한 이 영화에서도 역시 최고의 절정은 게임과 내기로 시작된 유혹이 사랑이 돼버릴 때이다. 뚜펀위에 대한 셰이판의 관심과 호기심은 모지에위와의 내기로 인해 본격적이고 노골적인 유혹과 공략으로 나아가고, 뚜펀위의 거부와 망설임을 뚫고 셰이판은 마침내 그녀를 손에 넣는다.
모든 나쁜 남자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비극은 뚜펀위를 사랑하는 척하던 셰이판이 단지 정복의 대상으로 여겼던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비극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를 버림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완수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단지 모지에위와의 내기 때문만도 아니며, 모지에위를 사랑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변화를 두려워한 것이고, 자신의 사랑을 두려워한 것이다.
사랑을 손에 얻고 난 뒤 그 사랑은 버려져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하게 만든 후 버리는 것, 그것이 정복의 완성이므로. 그리하여 다시 비극은 사랑을 버린 후에야, 혹은 잃은 후에야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들만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단지 쾌락과 욕정을 따를 뿐이라고 믿었던 셰이판도, 그리고 모지에위도. 사랑은 항상 그렇게 어긋난다.
문제는 세 명의 장 씨들이 만드는 화학작용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세기의 스캔들이 되어야할 세 남녀의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사랑이 별로 매혹적이지도 거의 치명적이지도 않았다. 장동건의 셰이판은 그렇고 그런 뻔한 카사노바로 새롭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았고, 장백지의 모지에위는 팜므 파탈의 기운을 보였으나 그 포스가 약했다. 가장 큰 문제는 장쯔이의 뚜펀위. 이 착하고 여린 여자에게는 정숙함과 공존해야할 도도함이 보이지 않았다. 거부나 저항이 아닌 그녀의 수동적 회피로 영화는 팽팽한 긴장 없는 밋밋한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스타일리쉬한 화면과 분위기가 조선말기의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색기를 담아냈던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비해서도 한참 후퇴했다. 허진호 감독은 잔잔하고 섬세한 작법에서 화려한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었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시대적 배경, 두 가지를 다 놓쳤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에서처럼 가장 일상적인 순간들에 만들어지는 사랑의 화학반응들을 포착해온 자신의 장점들도 전혀 살리지 못했고, 거대하고 화려한 시대의 옷을 걸쳐 입은 인물들이 제 역할을 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원작이 가지는 성적 문란과 방종을 통한 시대의 이단아들, 체제와 제도를 거슬렀던 인물들의 매력을 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쉽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
[사진=영화 <위험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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