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가 불러온 기묘한 향수, 도대체 김희선은 몇 살인가
김희선이라는 이름의 타임머신 ‘앨리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앨리스>는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SF 드라마로, 시청률이 10%를 넘나든다. 장르의 신선함과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가 궁금증을 유발하며, 수준 높은 그래픽과 액션이 볼거리를 선사한다. 여기에 김희선, 주원, 곽시양, 이다인 등의 연기와 케미스트리도 좋다. SF, 형사물, 액션, 멜로, 로맨틱 코미디 등이 섞인 복합장르의 매력이 높고, 배우 김희선으로 인해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지닌다. 그 결과 전 세대에 걸친 시청자들이 각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요소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 시간여행? 평행우주?
그동안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대개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여행이 일어난다는 설정의 판타지 로맨스 물이었다. <앨리스>는 시간여행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곁들인다. 아예 시간여행이 상용화된 미래세계를 그리고, 미래인들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와서 과거와 현재의 세계가 교란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또한 화려한 그래픽과 디테일한 소품이 이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SF 장르로 보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미래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들을 추적하는 형사물의 면모가 더해지며,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도 적절히 활용한다.
드라마 <앨리스>의 영상은 꽤 고퀄리티이다. 첫 회에서 2050년의 시간여행자들이 웜홀을 통과해 1992년으로 가는 장면부터 그래픽에 신경 쓴 티가 많이 난다. 앨리스 본부의 모습이나 첨단 무기들도 이채롭고, 1992년을 재현한 화면도 시대극으로 섬세하다. 몸싸움이나 카체이싱 장면도 과하다 싶을 만큼 생생하다. 이는 전체적인 서사의 연결이 헐겁고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을 순간적으로 몰입시켜 드라마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한다.
<앨리스>는 그동안 시간여행 서사에서 조심스럽게 다루었던 과거의 자신을 만나는 문제를 무람없이 다룬다. 과거의 자신을 만나, 심지어 죽여 버려도 미래의 나에겐 별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드라마는 이를 평행우주로 설명한다. ‘과거의 나’와 ‘미래에서 온 나’는 다른 존재이며, 평행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설명을 과학자의 대사로 들려준다.
여기서 잠깐 질문! 윤태이(김희선)는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2050년에 시간여행자 윤태이가 1992년으로 돌아가서 아들을 낳고 살다가 2010년에 살해된다. 이후 경찰이 된 아들 진겸(주원)은 2020년에 엄마와 똑같이 생긴 과학자 윤태이를 만난다. 그렇다면 진겸의 엄마(김희선)와 과학자 윤태이(김희선)는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드라마 <앨리스>는 윤태이가 시간여행에 의해 평행우주로 갈라진 세계에 살게 됨으로써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아마도 2020년의 과학자 윤태이가 2050년의 시간여행자 윤태이가 되었고, 그는 1992년으로 돌아가 예언서를 손에 넣는데, (현장에서 아버지의 잔혹한 죽음을 목격한 소녀가 어린 윤태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1992년의 세계에 머물면서 아이를 낳고 살기를 택하면서 새로운 평행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그 세계에서 진겸이 태어나 살고 있는데, 성인이 된 그가 엄마의 과거라 할 수 있는 과학자 시절의 윤태이를 만난 것이다.
◆ 김희선 자체가 시간여행
이쯤 되니, 감정선과 관계가 복잡해진다. 김희선과 주원은 처음에 만났을 때는 모자 사이였다가, 나중에 만날 때는 밀고 당기는 연인 비슷한 관계가 된다. 괴상하고 패륜적인 상상이라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런 난제들을 김희선이라는 키워드가 가볍게 해결해준다.
도대체 김희선은 몇 살인가. 하이틴스타로 데뷔한데다, 워낙 ‘방부제 미모’여서 도통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1990년대 김희선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25년간 그대로인 김희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시간여행’의 설정이 즉각적으로 이해된다. 오히려 그가 모성애 절절한 40대 엄마로 등장할 때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었지만, 뾰족한 말투의 32세 과학자로 등장하니 ‘우리가 알고 있는’ 김희선을 다시 보는 듯 전혀 위화감이 없다. 심지어 서비스 영상처럼 던져준 ‘김희선 머리띠’를 한 22살 김희선의 모습은 간접적인 시간여행 체험이다. 요컨대 김희선이라는 존재가 나이와 세월에 대한 감각을 교란시켜, 시간여행의 생소함과 모자 관계였다가 연인 관계처럼 되는 망측함을 한꺼번에 납득시킨다.
주원과 곽시양은 동갑으로 김희선과 열 살 연하이다. 그러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김희선은 두 사람 모두와 잘 어울린다. 더욱이 김희선을 보고 주원은 죽은 엄마를 떠올리며 글썽이고, 곽시양은 과거 연인을 떠올리며 착잡해하지만, 김희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곤 한다. 이처럼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도도함과 자기애에 가득한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는 90년대의 김희선’을 떠올리게 해, 더욱 향수에 빠진다.
◆ 과거로 가는 장치, 앨리스의 폐해
드라마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미래세계에 고객들에게 시간여행을 시켜주는 회사 이름으로, 아마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왔으리라. 앨리스의 직원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과거로 돌아가 과거인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도록 해준다’는 서비스의 취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간 고객들이 도망쳐 불법체류하거나 브로커와 거래하거나, 과거인을 죽이기도 한다. 엄격한 윤리적 규정과 제어시스템을 가진 듯 보이지만, 완벽히 통제되지 않는다. 급기야 미래인들과 과거인들 사이에 총격이 벌어지는데, 압도적인 기술로 무장한 채 ‘미개한’ 과거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미래인들이 외계침략자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것은 과거를 통해 ‘힐링’을 찾으려는 경향의 이중적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가 90년대의 김희선을 소환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김희선은 단지 시간여행의 서사를 납득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어떤 쾌감의 매체이다.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가 영리하게 90년대 노래 <여름안에서>를 다시 불러 히트시켰듯이, 드라마 <앨리스>는 90년대의 아이콘인 김희선을 통해 기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대중문화의 황금기이자 뭔가 희망에 부풀었던 90년대를 소환하여 시청자들에게 각자의 호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뭔가 울컥한 면이 있다. 그때 예언서를 본 자가 아니라면 누가 믿었으랴. 2020년에 우리가 재난과 양극화로 인해 마스크를 낀 채 재난지원금을 받으며 살게 되리라는 것을!) 위로를 찾아 과거로 돌아가지만, 거기에서 힐링이 아닌 온갖 모순되고 통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만나게 된다. 복고를 쫓아 과거를 헤집는 퇴행적인 문화가 과거 세계를 식민화하는 앨리스의 병패를 되비추는 거울상이 아닐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황진미 칼럼니스트 chingmee@naver.com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