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의 ‘게이코드 개그’, 왜 독보적인가
2013-01-11 김교석
- ‘게이의 대명사’ 홍석천의 매력을 탐구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홍석천은 언제나 마이너였다. 동시에 그가 서 있는 모든 분야에서 개척자였다. 요식업이든, 방송이든, 게이코드 코미디이든, 자신이 발 담그고 있는 각종 분야에서 자신의 성향이 빚어낸 어쩔 수 없는 부스럼을 잘 매만져 성공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2000년도 커밍아웃을 한 이래 12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렸다.
홍석천은 방송인인 동시에 꽤나 구력이 오래된 연기자다. 1995년 KBS 대학 개그제를 통해 데뷔한 그는 이듬해 MBC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 게이컨셉의 쁘와송으로 출연하여 인기를 끌었다. 이는 여장남자 수준의 코미디와는 정도가 다른 우리 공중파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게이 코드였다. 그래서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 중 가장 앞서는 것이 게이다. 그는 좋든 싫든 관계없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게이의 대명사와 같다. 우리 앞에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실존 게이였던 관계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게이란 단어를 형상하는 대표 이미지가 된 것이다.
사실 <남자 셋 여자 셋>에 홍석천이 출연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이를, 게이스러움을 실제로 본 적도 느낀 적도 없었다. 90년대에 당시 유행한 페미니즘 문화담론이나 미셀 푸코 등의 학자와 사조를 공부하면서 언급된 적은 종종 있었지만 2000년대 중반 외국에서부터 불어온 <메종 드 히미코> <퀴어 에즈 포크> <섹스 인 더 시티> <퀴어 아이>등의 영화, 드라마, 쇼 등의 매스미디어가 꽃미남에다 여성성을 부각한 고착화된 게이 캐릭터를 쏟아내서 인기를 얻기 전까지 ‘게이’는 이 땅에서 만큼은 부정적이거나 언급하면 안 되는 단어였다. 실제로 ‘모던패밀리’나 ‘SNL’ 등 게이를 희화화하는 미국 코미디물에 보다 많이 노출되고 케이블의 여성채널들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우린 홍석천 외에 게이의 존재를 본적이 없었기에 게이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스트레오타입화된 게이 이미지를 대표할지언정 게이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조금씩 누그러트려왔다. 이번 <라스> 출연은 꽤나 큰 진전이었다. 게이에 대한 비난과 손가락질을 혈혈단신으로 받아내기도 했고, 무엇보다 <라스>에서 펼친 개그코드 덕분에 본인 자신과 덩달아 게이에 대한 호감도까지 높이고 있다. 조심스러운 부분을 희화화하면서 웃음으로 비껴내는 그의 여유와 유머감각은 가장 강하다는 <라스>의 MC들마저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실 게이코드라는 게 성적인 뉘앙스를 깔 수밖에 없다. 영국이나 미국의 케이블 토크쇼가 아닌 이상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할 수위가 중요한데, 홍석천은 특유의 감각으로 기막히게 완급을 조절했다. 시작부터 ‘인물탐구’ ‘겉핥기’라는 단어를 물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시작해 시종일관 규현을 ‘스위트’한 타겟으로 삼아 “이따가 따로 밥 먹으면서”라고 추파를 던졌다.
개사한 노래를 부르면서는 오랫동안 알고지낸 선배 김국진에게 반전 고백을 했다. 당연히, 갖은 스킨십과 오지랖, 얼굴을 어깨에 묻는 홍석천식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당하는 사람들은 매뉴얼에 없는 상황에 쩔쩔 맸다. 이런 와중에 흘러나온, 대부분은 몰랐을 끈적한 데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야릇한 캐럴 ‘산타 베이비’는 홍석천 개그의 폭죽과도 같았다. 이렇게 순도 100% 게이 코드로 웃음을 연출할 수 있는 건 우리나라에서 홍석천이 유일하다.
사실, <라스>라는 제대로 된 무대를 만나기 전부터 홍석천은 꾸준히 성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특화해 여러 방송을 통해 펼쳐왔다. 그중 게이 코드의 코미디는 홍석천만의 아이템이었다.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케이블 채널 등의 방송활동 외에도 작년 <개그 콘서트> 600회 특집에 출연해 <남자의 자격>은 왜 나에게 콜 안하느냐”며 “나는 자격이 없나?” 등의 코멘트를 날렸고, 이른바 섹드립의 대가 신동엽과는 ‘SNL 코리아’에서 호흡을 맞췄다. <코미디 빅리그>에도 카메오로 출연해 ‘징맨’을 유혹하는 세레나데를 펼쳤다. 최근에는 <강심장> CEO 특집에 출연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SNS 서비스를 통해 공개하는 ‘못된 손 시리즈’는 게이 홍석천과 그가 펼치는 개그코드의 요약본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향한 편견과 곱지 않은 시선을 아예 더 노골적인 연출로 웃긴다. 마치 게이 컨셉으로 중무장한 미국 NBC 시트콤 <커뮤니티>의 대학총장이자 코스프레광 딘 펠튼(짐 러쉬 분)의 한국 버전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같은 의미로 자신을 연기자로 봤을 때 내시 역할을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데 시켜주지 않는다는 하소연은 나름 귀담아 들을 만하다.
<라디오스타>의 ‘해돋이 특집’에 머리를 비춘 그는 페미닌한 게이의 모습에서 아픔을 겪어낸 어른의 모습까지 친근하고 위트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매력을 발산했다. 낄낄거리는 것만으로 표피부터 진피까지 넘나드는 토크쇼 <라스>와 홍석천의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게이'라고 불러도 되는 사람이 만나니, 민머리 특집은 어느새 게이코드가 진득한 퀴어 특집이 됐다. 이를 <힐링캠프> <무릎팍도사> 식으로 진지하게 풀 수도 있었겠지만 눈물로 공감하기보다 웃음으로 스며들 때 담은 더 낮아지고 더욱 멀고 깊숙한 곳까지 흘러나가는 법이다.
홍석천은 힘들었던 순간, 그 시련을 마주보면서 웃음을 만들어냈다. 홍석천이 다시금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게이 이슈’가 아니라 그가 만든 이 웃음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그저 낄낄거릴 수 있는 웃음이지만, 마이너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으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성적 취향이란 코드를 갖고도 따뜻한 호감을 만들어낸 매력이 담긴 웃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국내 유일의 게이 코미디를 추구하는 홍석천의 힘이자, 그가 조금이나마 변화를 가능케 하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MBC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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