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뮤지컬女배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13-02-10     정다훈


- ‘남자배우들 열전’에 이의 있습니다!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나쁜자석>, <화랑>, <트레이스유>, <유럽블로그>, <트루웨스트>, <더프라미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마마, 돈 크라이> 등의 공통점은 뭘까? 정답은 무대와 객석의 풍경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무대 위엔 온통 남자배우들, 무대 아래 객석의 95%이상은 여성관객으로 꾸려졌다. 로비풍경도 다르지 않다. 조공(팬들이 좋아하는 배우에게 음식, 선물, 쌀 화환 등을 보내는 행위)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4년 동안 롱런하고 있는 뮤지컬 <화랑>의 부제는 아예 대 놓고 ‘꽃 화(花), 사내 랑(郞)’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연계는 두 편으로 나뉘었다. 마니아 취향 공연과 힐링 공연. 외피는 ‘남자배우들 열전’이다.

■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나

공연 마니아 중엔 여성이 단연 강세다. ‘잘생기고 훤칠한 남자배우들은 보고 또 봐도 좋다’는 1차적인 이유 외에도 여성들은 극 속 주인공에게 동화된 채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남성 관객들이 ‘이건 그냥 뮤지컬일 뿐이잖아’라고 코 웃음을 쳐도 여성 관객은 ‘그 배우 눈물 봤지? 너무 공감 되지 않니’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공감의 하트를 배우와 작품에 ‘뿅뿅’ 날린다.

반면 극장을 방문하는 남자 관객들 대부분은 (연애초반)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혹은 (연애후반)억지로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5만원짜리 소극장 뮤지컬 혹은 10만원짜리 대극장 뮤지컬 표 값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남성은 그 돈으로 술 한잔을 더 먹겠다고 말 할 정도이다. 게다가 사건과 인물을 대상화 한 채 작품 구조를 살피면서 극을 감상하는 남성들의 취향은 공연, 특히 뮤지컬과 궁합이 그리 좋지 않은 탓도 있다.

5년 전에도, 한 달 전에도, 어제도 극장을 방문했지만, 극장 전체를 꽉꽉 채운 이는 대부분 여성관객이었다. 그래서 이젠 남성 관객이 많이 보이는 날이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남성 관객들이 많은 ‘정말 특별한 날’은 과연 언제일까 궁금해서 알아보면, 회사에서 단체 관람을 오는 경우였다.



■ 뜨거운 남자 배우, 빠져나올 수 없는 ‘회전문’의 늪

2013년 1월, 여심을 사로잡은 핫 뮤지컬은 단연 <레베카>였다. VIP석 13만원, R석은 11만원임에도 주인공 류정한, 오만석, 유준상을 ‘보고 또 보는 회전문 관객’들이 많다. 그마저도 2월 초 좋은 자리는 일찌감치 다 빠져 시야장애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유령의 마력에 홀딱 빠진 대한민국 관객으로 인해 국내 관객 100만 돌파 기록을 세운 <오페라의 유령>도 마찬가지다. 개막초반부터 2월 말까지 티켓 구하기가 힘들다는 후문이다. 이어 4월엔 영화와 소설, 뮤지컬 모든 장르에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레미제라블>이 지방 공연을 마치고 서울에 입성한다. 배우 정성화, 문종원 김우형 등의 티켓파워가 얼마나 거세게 몰아닥칠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3년 공연 라인업만 살펴봐도 출연작이 중복되는 배우들이 많다. 여성 팬들을 몰고 다니던 <나쁜자석>의 배우들은 사이좋게 <트루 웨스트> 반 <마마, 돈 크라이>반으로 넘어갔다. 홍우진, 송용진, 장현덕, 정문성, 이동하 팬들의 다음 관람작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2012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던 배우는 단연 김다현이었다. ‘M 나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락 오브 에이지’에 이어 2013년엔 <아르센 루팡>에서 양준모와 함께 ‘괴도 루팡’으로 출연한다. <지킬 앤 하이드>로 새로운 하이드를 탄생시킨 양준모 역시 2013년 스케줄이 빡빡하다. 마니아 관객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씨왓아이워너씨>까지 출연하기로 확정했기 때문이다. <셜록홈즈>의 홈즈에 이어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광해/하선 역을 배수빈과 더블로 맡게 된 배우 김도현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젊은 배우로 무대에서 가장 콜이 많은 남자 배우는 성두섭이다. <형제는 용감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유럽블로그>까지 그가 가는 곳마다 팬들의 함성이 함께했다. 게다가 여기자들이 사심을 품고 인터뷰 하는 경우도 많이 봐 실제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또 다른 인기남은 김대현이 아닐까 싶다. <나쁜자석>, <트레이스 유>, 그리고 <그날들>까지 계속 끼를 발산할 예정이다. 파릇파릇한 새싹같은 배우 윤소호에게 쏟아지는 인기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여신님이 보고계셔>와 <트레이스 유>를 넘나들며 순정남과 마초남을 연기 중이다. 2013년 재공연이 예정된 <번지점프를 하다>에 다시 출연하는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따라 팬들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가슴은 말라붙은 지갑의 한기 그대로이다.

2013년 가장 바쁜 배우 최재웅은 <트레이스유>에 이어 배비장전을 소재로 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동시에 선보인다. 이어 4월달엔 고(故) 김광석의 노래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에 출연한다. <레베카>의 오만석 막심과 유준상 막심 역시 <그날들>의 경호원으로 변신한다. <레베카>의 팬들이 <그날들>의 객석을 채울지 역시 지켜볼 일이다.

문제는 동일 배우들을 무대에서 너무 자주 본다는 점. 소위 관객을 끌어모으는 티켓파워를 가진 남자배우들은 2013년 내내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을 정도다.

팬의 입장에선 분명 반가운 현상이다. 하지만 배우보다 작품 자체를 사랑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독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이전 작품 분위기를 다 벗겨내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작품 그리고 또 다른 작품으로 점핑하는 게 준비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바라보는 관객 입장에서도 모두 집중력을 갉아먹는 행위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 차가운 관심, 여자 배우들은 어디에?

10년 전에만 해도 그 많던 여자배우들은 어디 갔을까? 눈을 크게 뜨고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여배우들 이름은 남배우들 명단처럼 쉽사리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여배우는 <모차르트!>, <황태자 루돌프>에 이어 <레베카>의 주역으로 우뚝 선 배우 신영숙이다. <엘리자벳>의 김선영 배우가 <살짜기 옵서예>의 기생 ‘애랑’으로 다시 돌아오고, <아이다>의 차지연과 소냐과 여성 배우의 축을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뮤지컬 배우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옥주현과 <황태자 루돌프>의 김보경 최유하 외 <레베카>의 임혜영, <레미제라블>의 조정은,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의 임강희 전미도 정도만이 여배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뮤지컬 무대에서 다시 만나는 반가운 여배우들도 있다. MBC <위대한 탄생3> 멘토를 맡으며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배우 김소현이 제이민•원더걸스 예은과 함께 뮤지컬 <삼총사>의 ‘콘스탄스’ 역으로 돌아온다. <요셉 어메이징>에도 보석 같은 여배우 3인방이 출연한다. 바로 김선경 최정원 리사가 바로 그것. <빨래>의 엄태리 배우가 홍륜희 배우와 더블로 <날아라 박씨>컴퍼니 매니저 ‘오여주’로 출연하고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역 선민이 <괴도 루팡>의 오페라가수 '조세핀'역을 맡아 발렌타인데이에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 배우 열전이 아닌 ‘작품 열전’으로 성장하길

왜 <모범생들>여성 버전, <히스토리보이즈>가 아닌 <히스토리걸즈>, <훈남들의 수다>가 아닌 <훈녀들의 수다>는 없는 걸까? 라고 푸념한 적이 있다. 항상 남자배우들은 보여주는 위치에 있고, 여자관객들은 바라보는 위치에만 있는 것도 불만이었다. 남자배우들을 통해 그려낸 사회, 그들이 그려내는 세상만이 아닌 여자배우들을 통해 그려내는 또 다른 질감의 세상 이야기도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유독 우리 공연계에선 남자배우들만 이슈화 된다. 남자배우 2인극은 성공해도 여자배우 2인극이 성공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보도자료 역시 온통 핫한 남자 배우들 중심으로 글을 풀어낸다. 남자배우들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전통 아닌 전통이겠지만 그들의 위치가 뒤바뀌는 그 날은, 대한민국에선 정녕 오기 힘든 걸까?

‘엔터테인먼트’시각으로 보자면 나쁠 것은 없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보고 싶은 공연까지 뭐 그리 어려워야 하는가도 작용했을 거다. 다만 관객의 입맛에만 따르겠다는 그 태도가 불순해 보인다는 점이다.

한쪽에선 환호 받고 한쪽에선 상처받는 공연계. 이제 꽃미남과 힐링에도 지친 이들을 무엇으로 유혹할 참인가. 공연계의 다양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시기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설앤컴퍼니, 뮤지컬헤븐, 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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