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규·이제훈에 묻어가려 했나
2013-03-09 듀나
- <파파로티>, 제대로 된 음악 영화를 기대했건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파파로티>라는 제목으로 건달 출신의 클래식 성악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도. 그러다가 비교적 최근에 그 영화의 감독이 윤종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걱정을 하게 됐다.
윤종찬이 나쁜 감독이라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다. 그의 첫 장편인 <소름>은 아직도 한국어로 만들어진 가장 훌륭한 호러 영화들 중 한 편이다. 주인공의 친일논쟁에 정작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비평이 묻혀버린 <청연>도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영화이다.
내가 걱정했던 건 <청연>의 음악 때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청연>은 감독이 스탠리 큐브릭을 흉내내어 자기가 직접 뽑은 클래식 음악을 영화음악으로 쓸 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이었다. 그 아름다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2악장을 들으면서 그 때처럼 민망했던 적이 없었다. 음악선정은 게을렀고 그 중 어느 것도 영화 자체가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못했다. 그런 그가 클래식 음악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니 당연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 결국 이 영화의 언론 시사회에 갔었다. 걱정과는 달리 영화 음악 자체는 끔찍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좋았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전형적인 한국 멜로드라마의 기능성 음악 역할을 무리없이 하는 정도였다.
문제는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 태도였다. 영화의 주인공은 오페라 가수가 되려는 건달 청년과 그를 가르치려는 교사인데, 여기서 건달 청년은 클래식 레파토리로 단 두 곡을 부른다. 모두 푸치니다. 하나는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 다른 하나는 <투란도트>의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
기가 찬다. 모두 아름다운 곡이고 난이도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지나치게 유명하다. 특히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는 최근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 단골 레파토리로 나와 모든 사람들이 지겨워 죽을 지경인 곡이다. 어떻게 보더라도 두 곡 다 영화음악으로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노래들이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랬나, 궁금해서 기자간담회를 기다렸다. 감독의 답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한마디로 쉽게 가려고 했던 모양이다. 목표는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관객들도 볼 수 있는 대중 영화. 그래서 노래도 다들 아는 곡으로 골랐다나.
기가 막힌다. 도대체 그는 (그리고 그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사람들은) 도대체 관객들을 얼마나 낮추어 보고 있었던 걸까.
생각을 해보자. 물론 대부분 관객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그렇게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가수 발굴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보라. 대중음악을 다룬다고 해서 과연 그들이 모두가 아는 곡들만 고르나? 음악 소재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 작품을 통해 그들이 잘 몰랐던 곡, 또는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맥락 안에서는 전혀 다르게 들리는 곡들을 원한다. 그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음악 영화의 역할이다. 그런데 <파파로티>는 여기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 생각에 관객들은 <별은 빛나건만>보다 덜 유명한 곡을 들려주면 지루해 기절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건달 청년이 가수가 되는 수련 기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장면부터 그는 타고난 재능의 천재로 소개된다. 중간에 그를 다듬는다며 선생이 무언가를 하긴 하는데, 도대체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영화 내내 그는 감정이나 발성에 대한 뻔하고 막연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돌아가보기로 하자. 이런 프로그램의 골수 시청자들이 이들을 시청하면서 가수가 되고 가수로 훈련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라. 그것은 모두 드라마의 재미이다. 일단 이야기로서 재미가 있고 시청자들은 그런 새 지식이 노래에 실제로 적용되면서 어떻게 가수와 노래가 발전하는지에 알게 되면서 노래에 대한 또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클래식도 당연히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딕션은 중요하고 오페라의 맥락 안에서 텍스트의 의미도 중요하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발성법과 습관은 체계적으로 다시 가르쳐야 한다. 정상적인 드라마에서 이들은 모두 이야기의 재료가 된다. 하지만 <파파로티>는 안 한다. 대신 영화는 제자를 건달 세계에서 끄집어내려는 스승의 눈물겹고 뻔한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다. 하긴 제자가 건달 세계에 잡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스승이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스승 노릇을 하려면 일단 교사가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가 진짜로 제자가 제대로 된 성악가가 되길 바란다면 스크린 위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가르쳐서 제자가 정말로 나아졌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파파로티>는 무난한 대중영화이다. 특별히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두 배우의 이름값과 친숙한 이야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결정적인 것이 빠져 있다. 그건 바로 음악이라는 소재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다. 모르겠다. 아마 윤종찬은 고용감독의 위치에서 자신이 별다른 애정이 없는 영화를 찍어야 하는 입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흥행 성적들을 고려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보다는 더 열의를 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파파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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