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거론과 비꼬기, 을 누가 당하랴
2013-05-10 김교석
- 3세대 토크쇼 <썰전> 승승장구의 비결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목요일 밤 예능은 토크쇼의 향연이다. 그 동시에 토크쇼의 과거와 미래가 동시간대 펼쳐지는 기이한 날이기도 하다. MBC <무릎팍도사>가 게스트를 초대해 MC와 1:1로 대면하는 가장 전통적인 1세대 토크쇼라면, KBS2 <해피투게더3>은 그 다음 세대로 <서세원쇼>이후 자리 잡은 여러 게스트들이 각자 에피소드와 끼를 펼쳐내는 한 단계 진화한 버라이어티 토크쇼다. 그리고 JTBC의 <썰전>은 그보다도 다음 세대의 토크쇼라 할 수 있다. 편의상 <무릎팍도사>를 1세대로 치자면 <썰전>은 3세대 토크쇼라 할 수 있다.
1세대 토크쇼와 2세대 토크쇼가 게스트와 MC의 구도, 대면 대화냐 집단 패널의 에피소드식 토크냐 등의 형식에서 차이가 난다면 회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다는 <썰전>은 그 전 세대와 ‘진짜 이야기’를 나눈다는 태도를 통해 명확히 구분된다. 여기서 태도는 시청자들이 방송을 즐기는 방식의 변화에 기인한다. 시청자들이 그저 TV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매체를 활용해 수다를 떨고 포털이나 게시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영향력을 만드는 시대적 풍토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실’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정치, 방송 관련 비평 등,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소재들로까지 예능 토크쇼의 범주가 확대되었다. 사무실이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나눌법한 진짜 수다가 TV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즉, 연극무대 같던 토크쇼가 일상의 수다로 바뀐 것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이전의 토크쇼와 <썰전>은 극명하게 갈린다.
매체 환경이 다양해지면서 TV속 연예인들의 경험담은 시청자들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그냥 재밌지만 휘발성 강한 무엇으로 격하되었다. 이는 스타파워의 약화와도 관련이 있다. 그 어떤 스타가 나온다고 한들, 논란거리를 팔아봐야 하루 정도다. 김태희와 비의 열애설에도 비의 복장과 휴가 일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톱스타 열애설의 기대감을 한껏 키운 뒤 조인성, 김민희 열애를 특종 보도한 파파라치 매체는 사과 비슷한 말까지 남겼어야 했다. 지금 시청자들은, 대중은 그 어느 때보다 콧대가 높은 시대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게스트에 의존하는 토크쇼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적자생존이 치열한 지금 사회에서 본인을 둘러싼 일상에 감정적으로 몰입이 더 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많은 시청자들이 인터넷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속에서 접하는 뉴스나 이슈가 TV보다 훨씬 많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대통령과 함께 방미한 대변인이 성추행으로 현지에서 경질되는 뭐 그런 다이나믹한 세상이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 실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들에 대한 수다와 대화가 더욱 듣고 싶어진 시대다. 이런 변화의 지점들이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정치토론과 대담 형식의 프로그램, 즉 정치의 예능화의 가능성을 만들었다.
반면, 연예인들의 친분이나 재밌는 에피소드와 같은 박제화된 토크쇼의 시대는 <놀러와>의 몰락과 함께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진표가 좋은 <해피투게더3>만 근근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가장 최근에 이러한 류의 토크쇼로 등장한 <화신>은 MC진의 위용에 비해 좀처럼 자리를 못 잡고 계속 변화 중인 것으로도 확인된다. 이것은 SNS 등을 통해 대화의 주체가 자신이 된 시청자들의 위치, 입장 변화가 만들어낸 시대적 흐름이다. 쉽게 말해 어디서 써먹거나 적어놓기 힘든 연예인 에피소드보단 쉽게 자기화할 수 있는 콘텐츠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와 닿게 느끼는 것이다. 일반인이 등장하는 토크쇼, 진솔하고 삶에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전해줄 거라 기대되는 토크쇼가 강세인 이유다.
지난 목요일(9일) 한쪽에서는 <진짜 사나이>로 인기를 구가중인 샘 해밍턴이 벼락스타처럼 등장했고, 한쪽에서는 예능에 출연하는 많은 게스트들이 그렇듯 영화 홍보 차 조합된 게스트가 나왔다. 방송에서 눈물도 보이고, 진솔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재밌는 장면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TV 꽤나 본다는 사람 입장에서는 9일자 <무릎팍도사>나 <해피투게더>는 <라디오스타>에서 요약본으로 들려준 이야기의 리바이벌 혹은 보충 편이었다.
이것이 바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가는 기존 토크쇼의 한계다. 샘 해밍턴의 KBS 희극인실 적응기나 안암동 체류기, 뮤지의 성대모사와 여행지에서 연상의 아내와 만나 결혼한 이야기, 키스를 부르는 입술 등의 이야기는 다른 방송에서 이야기했던 것의 반복이었다. 어차피 한 사람의 생. 그 안에 먹힐만한 에피소드가 그렇게 계속 쌓일 리가 없다.
그래서 게스트가 없는 <썰전>이 오히려 가장 핫하고 신선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 샘 해밍턴이 눈물과 웃음을 교차하면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캐릭터가 실제 모습일 것 같던 김상경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의정부의 터줏대감 문희상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진짜’를 이야기 한다. <무릎팍 도사>에서 샘 해밍턴이 타방송사 프로그램 이야기해도 되냐고 물을 정도로 아직 가리는 게 많지만, <썰전>에서 실명거론과 비꼬기, 비판은 기본 전재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새로운 세대의 토크쇼의 가능성을 만들고 있다.
목요일 3인 3색의 토크쇼의 성적표가 의미하는 바는 기존 토크쇼의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대에 맞게 태도에 변화를 주고 토크의 범주와 질을 높이지 않는 한, 더 이상 같은 방식과 틀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더욱 더 다가오고 있다. 강호동의 진행 스타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야식 메뉴를 개발하기 앞서 김제동이 하는 토크 콘서트, 각종 팟캐스트들의 인기 원인을 살펴봐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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