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전쟁’, 우리 혹은 KBS가 할 수 있는 일
2011-04-25 우석훈
- 우리들을 위한 영화 ‘당신과 나의 전쟁’
[엔터미디어=우석훈의 대중문화 파토스] 자살자 여덟 명, 매달 한 명씩… 카이스트에서 교수까지 포함해서 벌써 다섯 명이 자살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장기적이고 더 빈번하게 자살이 일어나는 집단이 한국에 있다. 바로 쌍용차 해직 노동자들의 얘기이다. 노동환경연구소의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패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3.74배 높다. 그리고 95%가 가족관계의 약화를 호소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당신, 아마 십중팔구로 40대가 되면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정규직, 이미 비정규직 혹은 알바나 백수 상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년이 명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보장되는 직장은 30대 미만의 노동자에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아주 부자 아버지가 있어서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거나, 혹은 아주 능력이 있어서 언제든지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쌍용 자동차 해직 노동자의 얘기는 바로 우리들의 얘기들이다.
자, 잠깐 지난 한 달 동안 여러분들이 보셨던 예능방송이나 드라마 등 TV 방송이나 영화에 대해서 한 번 회상해보시라. 그 중에서 알바의 권익이나 노동자의 삶을 적극적으로 비추어주고, 그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진 방송이나 영화가 단 한 편이라도 있었는가? <88만원 세대> 초고를 거의 끝낸 상태에서 이탈리아의 비정규직에 관한 소설 <천 유로 세대>를 본 적이 있다.
펑크 소설이라는 묘한 분류명을 갖던 그 소설에도 IT 회사에 근무하는 비정규직들의 노동분규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이탈리아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고개를 들어보면, 그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아닌가? 그런 현실은, 이제 방송과 영화에서 사라졌다. 드라마에는 재벌들만 잔뜩 나와 ‘출생의 비밀’에 이어 ‘재벌의 비밀’이라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코드가 하나 새로 생겼다.
물론 이따금 알바 얘기는 단골 소재이기는 하지만, 영화 <깡패 같은 내 애인>의 경우처럼, 결국 취업을 해야 승진도 하고, 애인도 다시 만나게 된다는, 하여간 숨 죽이고 성공의 그 날을 위해서 ‘닥치고 취업준비’, 이런 게 궁극의 메시지가 된다. 아니면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는 쇼비니즘 계열이거나. 지독할 정도로 단조로운 주제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이데올로기 방송 외에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게 없다.
물론 우리의 삶은, 지독할 정도의 경제위기와 비정규직화로 인해서 간당간당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벌 얘기와 스타 후일담만 열심히 보고 있어서 현실은 촌보도 바꾸지 않는다. 자신은 절대로 쌍용차 해직 노동자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이런 얘기에 관심 갖지 않아도 좋다. 어차피 같은 한국에서 같은 하늘을 놓고 살아가지만, 일상 생활에서 이 두 집단이 만날 일은 거의 없다. 그게 ‘요쇄형 주택’을 지었던 타워 팰리스의 정신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면, 쌍용차동차에서 벌어진 파업 현장과 그 기간 벌어진 사건을 다룬 다큐멘타리 <당신과 나의 전쟁>은, 최소한 지난 3년 동안의 한국 분위기에서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이다. 그리고 설령 만들어졌다고 해도 상업 극장에서 공개될 수 없는 영화였다. 이 정도의 시사성과 예술성을 갖춘 다큐라면, 당연히 KBS의 교양방송으로 방영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지금의 KBS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최소한의 매너도 갖추지 못한 깡패급 혹은 서남표 총장급의 막무가내 집단들에게 강탈되어 장악된 상황이다. 극장? 팝콘 장사하는 극장에서 어디 쌍용차 얘기를 걸어줄 데가 있는가?
이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얘기는, 결국 철거민 운동의 상징이 되어버린 두리반이라는, 전기도 끊긴 철거 중인 칼국수 집에서 상영되었고, 100여명이 그 역사적 순간을 같이 할 수 있었다. 2차, 3차 상영은 한겨레 신문사에서 열렸다. 물론 모두 무료였다. 무료라도 어지간해서는 안 보는 우리들, 왜냐? 현실은 늘 아름다우면서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이제 두 가지가 있다.
1번. 2만원 정도하는 <당신과 나의 전쟁>을 DVD로 구입해서, 이런 다큐가 이번 정권 남은 기간 동안에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소극적 지지.
2번. KBS에 공개 청원하여 <당신과 나의 전쟁>을 상용하도록 하는 일.
1번은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고, 2번은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복직시키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금과 같이 개별적으로 자살하도록 방치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이런 무의미한 집단 해고를 줄이는 효과를 정치적으로 조금 발생시킬 수 있다.
매일 밤 수없이 공영방송 내에서 진행되는 전파낭비, 그 가운데 런닝타임 80분짜리 다큐 한 편을 방영하지 못할 기술적 이유가 있는가? 없다. 방영이 거부되는 것은 정치적 이유 외에는 없는데, 그 정치적 이유는 바로 지금 우리들의 댓글과 클릭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칼럼니스트 우석훈 < 2.1연구소 소장 > honortomeadows@entermedia.co.kr
[사진=‘당신과 나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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