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라서 가능한 세련된 이별 연출법

2013-06-03     김교석


‘진짜 사나이’ 감동코드, 촌스럽지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한 가지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감동코드는 양날의 검이다. 가장 쉽고 빠르게 마음을 훔치는 방법이기는 하나 동시에 가장 촌스러워질 수 있는 방식이다. 특히 재미를 토대로 삼는 예능에서 감동코드를 쓰면서 과유불급의 명제를 제대로 지킨 사례는 흔치 않다. 그 와중에 일상과 방송, 진짜와 설정, 일반인과 출연진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피어나는 요즘 예능에서 공감대를 자극하는 감동코드에 대한 유혹은 훨씬 더 강해졌다. 허나 제대로 연출해서 먹히기는 같은 이유로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런데 <진짜 사나이>의 감동코드에서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눈물만 뽑아내는 오글거림이 아니었다. 리얼 입대 프로젝트라는 부제처럼 실제 군대 생활을 코스프레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대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카메라 앞에 끄집어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뜨거운 전우(혹은 친구이자 또래간의 우정)애를 느끼고, 각자 가슴에 품은 사연을 들으면서 벽을 허문다. 그냥 나열하면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번 화룡대대와의 작별 에피소드는 올리브TV의 <마스터셰프코리아2>와 함께 현재 국내 예능 중 감동코드를 가장 잘 연출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감동코드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진짜 사나이>의 주인공을 멤버들만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일반인 병사들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촬영지였던 백마부대에서보다 일반인 병사들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카메라 앞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선임인 그들과 후임인 출연진들 간의 갈등과 화합에 초점을 맞췄다. 그 속에서 원칙주의 분대장과 샘 해밍턴의 갈등, 장준화 상병의 카리스마와 현정민 상병의 따스함, 만물박사 캐릭터로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심재빈 상병 등 모두가 류수영 이병만큼이나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리고 스토리의 진행상 이들의 활약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어쩌면 <안녕하세요>보다 훨씬 더 일반인의 존재가 크고 <우리 동네 예체능>보다 훨씬 더 일반인의 참여를 요하는 방송이 <진짜 사나이>다. 다큐형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모든 걸 통제하고 갈 수 없다. 말 그대로 상황에 따른 새로운 변수들과 현장에 맞춰서 진행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다. 반대로 변수는 새로운 가능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빠 어디가>에 아이들의 순수함이 있었다면, 여기엔 사병들의 캐릭터와 전우애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주 화룡대대에서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간 친해진 캐릭터들과의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었다. 아쉽고, 진짜 이별을 느끼는 건 그 때문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헤어짐. 예비역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 기분과 감정을 <진짜 사나이>는 걸스데이라는 축복 속에서 잘 버무려서 전했다. 신기하게도 이 일반인 사병들을 보면 군 생활에서 겪은 듯한, 아님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추억이기도 하고 이해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름은 다르겠지만 우리네 주변에 언제 어디서나 한 번은 본 듯한 사람들이다. 걸스데이 앞에서 원래 성격대로 환호하거나 어쩔 줄 모르는 심재빈 상병과 현정민 상병의 모습도 그렇고, 드러내놓고 즐기진 못하지만 뒤늦게 댄스에 발동 걸린 원칙주의 양태승 분대장과 외모와 다르게 수줍어하는 장준화 상병도 그렇다. 이런 이들을 서경석, 류수영 이병이 이끌고 춤을 추는 모습에서 사랑스런 감정이 돋아난다. 그리고 주변을, 뒤를 돌아보게 한다.



<진짜 사나이>는 2013년 오늘날의 군대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연예인들이 그 속에서 들어가서 고생한다는 모습을 넘어서 진짜 군대를 보여줬다. 실제 훈련과 내무생활을 100% 재현했다는 게 아니라 군대에서 느낄 수 있는 진한 연대를 일반 사병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만약 일반 병사들이 그저 배경으로만 등장하다가 마지막 날을 지금처럼 연출했다면 걸스데이의 안무처럼 손을 말아 쥐게 되었을 것이다. 허나 누구나 안다. 일반 사병 입장에서 이것은 연기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랑받는 샘이 다소 지나치게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아도 그와 분대장의 마음을 모두 알기에 마지막에 흘린 그들의 눈물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방송 자막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다. ‘서로를 걱정하는 우리’라는 말은 예비역이라면, 살면서 숱한 관계를 맺어온 우리 누구나 마음 한켠에 담고 있을 기억이다. 현역 병사일 때 모두가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밀려오는 그 감정. <진짜 사나이>는 그 감정까지 전달했다. 이보다 더 세련된, 그리고 재밌는 국방 홍보물은 없을 듯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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