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탄’, 어쩌다 허점투성이 됐나
2011-04-30 정덕현
- '위탄', 왜 공감 없는 오디션이 되어갈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위대한 탄생'의 허점이 너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심사위원 점수나 개인의 실력은 점점 당락과는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있다. 심사위원 최고점인 35.5점을 받은 정희주의 탈락은 '위대한 탄생'의 공감 없는 투표시스템 문제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다. '슈퍼스타K'가 그렇게 했듯이, 적어도 심사위원 최고점을 받은 경쟁자는 예외를 두는 식의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멘토제가 가진 허점이다. 멘토와 심사위원이 같다는 사실은 실시간 방송 문자 투표를 통해 당락이 결정되는 '위대한 탄생' 투표시스템의 공정성을 뒤흔드는 가장 큰 이유다. 멘토들은 아무래도 자기 멘티에게 점수를 줄 수는 없지만 마음이 더 갈 수밖에 없다. 물론 멘토들은 스스로 그것이 심사와는 상관없다고 말하고 또 어떤 멘토는 실제로 남의 멘티에게 더 후한 칭찬을 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시스템이 공정하게 굴러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멘토가 아무리 공정하게 어떤 심사를 한다 해도,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그것을 공정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증이 당락을 결정하는 시청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건 당연하다. 즉 이것은 멘토링과 심사를 동시하게 만든 시스템이 만들어낸 스토리의 문제다. '위대한 탄생'은 이 멘토의 스토리와 심사위원의 스토리가 부딪치면서 점점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되자 멘토들이 갈등하는 것 같은(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림이 연출되고, 그것조차 당락 투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김태원의 멘티들이 단 한 명도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물론 그들의 실력이 바탕이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실력만이 아닌 다른 요소들에 의해 지나치게 휘둘리는 '위대한 탄생'의 당락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멘토제는 또한 멘티들보다는 멘토들에 더 의존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즉 어떤 멘토를 만나느냐에 따라 멘티는 생존이 결정되기도 한다. 멘토링은 다른 표현으로 하면 프로듀싱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프로듀싱은 멘티의 실력이 아니라 멘토의 실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대한 탄생'이 자칫 훌륭한 가수의 탄생을 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프로듀서(멘토)의 탄생을 보는 프로그램으로 흘러가는 우려를 낳는다. 가수에 대한 주목도가 '슈퍼스타K'와 비교해 너무 낮은 것은 이런 멘토에 집중하게 만드는 멘토제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대중들은 여전히 가수들에 집중하고 싶은데, 시스템이 자꾸 멘토들(의 멘토링)을 바라보게 하는 건 '위대한 탄생'이 왜 공감 없는 오디션이 되어가는 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멘토들의 멘트가 시청자 투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 투표는 궁극적으로 멘토들이 한 멘트에 대한 공감의 표시여야 하지 않을까. 어쩌다 지금처럼 멘토들의 말에 공감이 아닌 반감을 갖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일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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