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무료 백신, 건강보험료 충당 논란…"건정심 논의 전 확정"
건보공단 재정악화와 꽂아내린 정책 감사 대상 우려 2000년 건보 재정 논란에 5천명 구조조정 선례에 불안감 커져
[엔터미디어 이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무료 접종 비용 분담에 건강보험료를 사용하겠다고 해 논란이 예상된다. 사회적합의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안건도 올리기 전에 사실상 확정방침을 지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케어(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로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꽂아내린 정책으로 인해 감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18일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한 질의에서 "일반 의료기관에서 하게 되는 백신 접종조차 접종비를 건보와 국가재정이 분담함으로써 전부 무료로 접종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과 정부예산을 각각 7대3으로 지원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건강보험은 정부가 아닌 가입자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의약품 등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할 때 가입자 단체가 함께하는 건정심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자칫 건정심 기구를 압박하는 용도로 사용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건정심에서의 논의도 예정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건강보험으로 지원하겠다고 한 발언은 월권이자 내리꽂기식 정책발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강보험공단도 난감해 하는 모양새다. 청와대의 방침에 대해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 조차도 그 내용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건보공단 직원들은 자칫 감사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건강보험은 급속한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이른바 '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더해져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실제 건강보험은 2011~2017년 줄곧 흑자를 기록하다, 문 케어가 본격화된 2018년 177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2019년 적자는 2조8243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지난해에는 1~3분기에만 2조6294억원 적자에 달한다. 여기에 코로나19 백신까지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면 연 2조원 가량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배경에 최재형 감사원장은 최근 신년사를 통해 "국가재정이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운용되도록 점검·보완하겠다”면서 “장기적 재정 관리가 필요한 고용보험기금과 건강보험 등에 대해서는 건전성 위협 요인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적절하게 예측,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보완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건보공단 내부에선 사실상 감사원의 감사 대상 1순위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과거 의약분업과 재정악화로 겪었던 구조조정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건보 한 직원은 "코로나19 백신까지 건강보험으로 더해지면 적자가 더 불어날 수밖에 없고, 앞으로 이런 선례가 반복될 경우 그 책임은 결국 공단에서 지게 된다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2000년도 초반 당시 건강보험 재정 논란이 불거져 5000여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한 선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백신을 건보료로 지원한다는 것은 결국 건보료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라며 "정부 예산이 아닌 가입자의 건강보험 예산을 쓰면서, 발표전에 가입자는 물론 관계기관과 논의도 안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