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이제훈의 주먹 앞에 빛나는 ‘로스쿨’ 김명민의 법
주먹이냐 법이냐, ‘모범택시’와 ‘로스쿨’의 상반된 정의 구현 방식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주먹이 가까울까, 법이 가까울까. 이 질문에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이미 있지 않은가. 다만 그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에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사법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법 현실 속에서,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주먹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얻고픈 욕망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런 방식이 일시적인 해소일 뿐, 결국 또 다른 범죄가 된다는 점에서 주먹보다는 법을 통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만만찮을 게다.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와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은 그런 점에서 상반된 정의 구현 방식을 보여주는 드라마들이다. <모범택시>가 ‘사적복수대행’을 아예 대놓고 가져온 반면, <로스쿨>은 한국대 로스쿨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법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이를 통한 정의 구현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모범택시>의 김도기(이제훈)와 무지개 운수 사람들은 사적 복수의 화신들이다. 그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가해자들을 납치해 사설 감옥에 가둬 버리고, 심지어 장기 밀매의 희생자로 쓰기도 한다. 상식적인 세상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범법 행위들이지만, 이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호응까지 얻는 이른바 다크히어로들이다. 16%까지 치솟은 시청률은 우리네 대중들이 사법 체계와 이를 통한 정의 구현을 얼마나 신뢰하지 않는가를 에둘러 말해준다. 법보다 주먹이라는 것. 물론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열망이 투영되는 것이지만.
반면 <로스쿨>은 법의 결과 그 자체만큼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한국대 로스쿨에서 벌어진 서병주(안내상) 살인사건과 이로 인해 피의자로 몰린 양종훈(김명민) 교수를 통해 보여준다. 한국대 로스쿨 부원장 강주만(오만석)이 딸 강솔B(이수경)를 범인으로 생각해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기 위해 위증을 하려 하자 양종훈은 이를 막아준다. 만일 강주만이 위증을 그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었지만, 양종훈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이런 선택은 그의 강직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로스쿨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는 사실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로스쿨이라는 공간을 가져온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수사를 통해 어떤 판결이 이뤄지는 과정이 ‘법’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이뤄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고, 또한 일부 교수들에 의해 벌어지는 탈법과 순수한 학생들 사이의 대결구도가 생겨나는 공간이다. 또한 법을 공부하는 이유가 저마다 다른 학생들을 통해서(금수저 흙수저가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어떤 이들이 법조인의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도 던져지는 공간이다.
당장 눈앞에서 시원시원한 건 <모범택시>의 김도기가 날리는 주먹일 게다. 하지만 그것이 오락물로서 당장의 카타르시스를 주긴 하지만, 막상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의 갈증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로스쿨>은 갖가지 절차와 과정으로서 중요한 법 조항들이 언급되고 그래서 내용을 따라가는 것조차 쉽진 않으며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복잡하다. 그래서 답답하지만, 이런 복잡한 절차를 통해 얻어진 어떤 정의와 진실들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당장의 주먹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
법보다 주먹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사회가 건강하다 말할 순 없다. 그래서 <모범택시>의 주먹은 에둘러 이 다크히어로들을 통해 건강하지 않는 사회를 풍자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판타지가 오락과 카타르시스 그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고 보긴 쉽지 않다. 반면 <로스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을 통한 정당한 방식의 정의 구현을 애써 추구해가는 인물들의 가치를 드러낸다. 당장 주먹이 앞서는 세상에 이 어려운 길을 택한 <로스쿨>의 가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