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청춘’, 오만석의 군홧발에 처절한 응징을 바라는 까닭
‘오월의 청춘’, 청춘 짓밟는 오만석에게서 신군부가 떠오른 건 ‘오월의 청춘’, 이도현과 고민시의 이별에 담긴 시대의 폭력
[엔터미디어=정덕현] 황기남(오만석)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청춘들의 모습에서, 군홧발에 짓밟힌 5.18 광주 시민들의 모습이 겹쳐지는 건 왜일까. KBS 월화드라마 <오월의 청춘>은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황희태(이도현)와 김명희(고민시) 그리고 이수찬(이상이)과 이수련(금새록)의 엇갈린 청춘의 사랑과 아픔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을 이토록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은 황기남이라는 인물의 폭력은 이 이야기를 청춘 멜로 그 이상의 시대적 은유로 읽게 만든다.
신군부와 손잡은 황기남이 지역 유지인 이창근(엄효섭)을 이용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 희태와 이창근의 딸 이수련을 정략 결혼시키려는 그 야욕은, 그 불똥이 명희에게도 또 수찬과 수련에게도 모두 튀게 만들었다. 수련에 요구로 대신 선 자리에 나갔다가 명희와 희태가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자 이제 황기남이 폭력까지 동원해 명희를 협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기남은 이창근과 아들 이수찬이 운영하는 회사마저 자신과 줄을 댄 신군부측 의원 사람을 대표로 세우라 종용했다. 결국 황기남은 이창근의 사업체는 물론이고 딸마저 가져가려 하고, 그 걸림돌이 되는 일들은 갖가지 폭력을 동원해 치워버리는 잔혹함을 보였다. 그가 보안부대 대공수사과 과장자리까지 오른 데는 명희의 아버지 김현철(김원해) 같은 피해자의 피와 눈물이 있었다.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연좌제로 묶어 빨갱이 취급을 받은 김현철은 고문으로 다리를 절게 됐고 그 후 변변한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명희와 희태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위해 이별을 선언하고, 수련은 명희도 또 아버지의 사업도 지키기 위해 정략결혼을 하기로 결심하며, 명희를 짝사랑하는 수찬 역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은, 모두가 황기남의 폭력적인 야욕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80년 광주의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꽃다운 청춘들의 피눈물과 꽃처럼 아름다웠던 당대 광주 시민들의 상처가 겹쳐지는 것. 황기남은 그래서 신군부의 잔혹한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오월의 청춘>은 계엄령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본격화되면서, 5.18 민주화운동의 광경들이 담겨지기 시작했다. 정혜건(이규성)과 박선민(주보영) 같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고, 수련도 도왔던 전단지를 나눠줬다. 이들이 맞닥뜨리게 될 아픈 이야기들은 향후 <오월의 청춘>의 중요한 밑그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월의 청춘>은 5.18 민주화운동을 명희와 희태 같은 청춘들이 겪는 사랑과 좌절, 상처들을 통해 에둘러 그려낸다. 그 멜로 자체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어떤 면에서는 복고적이라 여겨질 정도로 옛사랑의 정서를 담아내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익숙한 멜로를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시대적 아픔으로 연결해주는 중요한 고리는 황기남 같은 시대의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그 잔인한 폭력들을 자신의 야망을 위해 심지어 자식에게까지 가하는 황기남은, 그래서 국민들을 위해 헌신해야할 국가를 군홧발로 장악해 오히려 국민들에게 총칼을 겨눴던 신군부를 떠올리게 한다. 과연 그는 이 청춘들에게 저지른 잔혹한 짓에 대한 대가를 받을 것인가. 현실에서는 좀체 일어나지 않았던 그 대가가 적어도 드라마 속 황기남을 통해서 만큼은 치러지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