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故 이태석 신부님이 남긴 씨앗, 토마스가 전한 울림
‘유퀴즈’가 담는 이야기 역시 누군가에게는 씨앗이 된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암으로 투병하다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님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남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의사이면서 교사였고 악기 연주자이면서 사제였다. 아픈 이들을 돌보고 치료해주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또한 사제로서 활동하셨던 고 이태석 신부님. 우리에게 다큐영화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신부님의 이야기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이른바 ‘신묘한 씨앗 사전’ 특집으로 소개된 건 실제로 신부님이 뿌린 씨앗이 성장해 그 신부님의 길을 걸어가는 토마스라는 톤즈에서 온 청년 때문이었다.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님이 환자를 따뜻하게 돌보는 모습에 감명 받아 그를 돕고, 그에게 배우면서 자라난 토마스는 “한국에서 공부하지 않겠냐”는 신부님의 제안을 받고 기쁘면서도 두려움이 앞섰다고 했다. 왜 그렇지 않겠나. 언어도 다른 낯선 타국에서 그것도 의대를 선택해 공부한다는 건 그의 말대로 100배는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 올 때만해도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도의 한국말밖에 모르던 청년은 그러나 의대에 들어갔고 졸업까지 한 후 현재 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경험을 넓혀가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신부님이 자신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굳게 믿고 3~4년 동안 3시간만 자고 공부를 했다는 토마스. 휴일도 없이 공부를 했다는 그 어려운 과정에는 그래서 먼저 돌아가셨지만 늘 이태석 신부님이 함께 하고 있다 여겨졌다. 그는 이태석 신부님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마음에 그 어려운 길을 계속 걸었다고 했다.
가족이 보고 싶어도 또 힘들어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는 토마스는 결국 졸업을 하고 학사모를 쓴 날 이태석 신부님의 흉상에 학사모를 씌워주고 절을 한 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이태석 신부님이 살아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셨을 것 같냐는 질문에 토마스는 “고생했다. 잘했다”라 했을 거라 말했다. 신부님은 돌아가셨지만 그 한 마디에 어울리는 성취를 해내기 위해 걸어왔던 것.
토마스는 하필이면 우리네 의과에서도 잘 선택되지 않는 외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여기서 경험을 쌓은 후 남수단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아픈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남수단에는 병원이 별로 없어서 맹장 같은 간단한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병으로도 사망에 이르곤 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이태석 신부가 걸었던 그 길을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이태석 신부님이 했던 일들을 자신이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털어놓았다.
무엇이든 심으면 자라나는 밭이 있다면 어떤 씨앗을 심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별 고민 없이 “병원”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조금만 걸어도 병원이 있지만 남수단에는 병원을 가기 위해 며칠을 걸어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태석 신부가 뿌린 씨앗으로 성장한 토마스는 그렇게 자신 또한 남수단에 병원들이 더 많아지게 될 씨앗을 뿌리려 하고 있었다.
“한국에 살면 잘 살 수 있죠. 근데 그게 제가 원하는 게 아니고 이태석 신부님도 원하시는 게 아니고 그래서 돌아가는 게 저한테 제일 중요해요.” 한 사람이 만든 어떤 영향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유퀴즈 온 더 블럭>은 ‘신묘한 씨앗 사전’ 특집을 통해 보게 해줬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 또한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어떤 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신묘한 씨앗이 될 것이므로.
엔터미디어 채널 싸우나의 코너 ‘헐크토크’에서 코로나19 시국을 관통하면서 더욱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유퀴즈’와 유재석에 대해 정덕현 평론가가 분석하고 헐크지수를 매겼습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