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보는 시대, 김혜자가 ‘전원일기2021’ 통해 전하는 말

‘전원일기 2021’, 추억담이 아닌 현재에 던지는 질문

2021-06-19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 MBC에서 60주년 특집으로 <다큐플렉스> ‘전원일기 2021’ 4부작을 내놨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3년간 방영됐던 드라마. 하지만 종영한 지 벌써 19년이 흘렀다. 4부작의 첫 회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중심축이었던 최불암, 김혜자를 중심으로 고두심, 박순천, 김용건, 유인촌, 김수미 등등의 출연자들이 마치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한 자리에 모이듯 하나 둘 반가운 얼굴을 보이는 광경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을 고사했었다는 김혜자는 <전원일기>가 자신을 성장시켜줬던 고마운 드라마라며 나중에 죽으면 여기 출연했던 이들이 다시 다 만날 것 같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김혜자의 이 말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그 긴 세월 동안 함께 동고동락하며 진짜 가족이자 이웃처럼 살아왔던 이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함께 모이는 광경은 더더욱 큰 기대감과 설렘을 불러 일으켰다.

농촌이 배경이라 ‘농촌드라마’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휴먼드라마’라고 말하는 김혜자의 말처럼 <전원일기>는 따뜻한 인간애가 가득한 드라마였다. 김혜자는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곳에 늘 갈등이 존재하지만 <전원일기>는 그 갈등을 처리하는 방법이 달랐다고 했다. “딴 드라마들은 그 갈등의 잔해들이 있잖아. 욕하고 막 미워하고 이런 걸 아주 자세히 보여줘요. 그럼 사람들이 재밌어가지고 어머나 이렇게 욕하면서 봐요. 근데 이 드라마는요, 엄마, 아버지 그 다음에 또 험한 말하는 일용엄마까지요. 그 (갈등의) 잔해들을 주워요.”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던 이들로 하여금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게 만들었던 248회 ‘전화’편은 <전원일기> 식구들 모두가 꼽는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처음 전화를 놓고 신기해 여기저기 가족들이 전화를 하지만, 정작 전화 걸 데가 없는 김혜자가 한밤 중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을 떠올리며 고두심과 박순천은 지금도 먹먹해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침 어머니가 돌아가신 김혜자를 위한 작은 위로라도 하고 싶어 박정수 작가가 썼다는 그 명장면은 이 드라마가 제작 과정에서조차 얼마나 ‘휴머니티’를 담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줬다. 출연료와 흥행과 시청률 같은 것에 목매는 요즘 같은 세태에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 대목이었다.

입양이라는 말이 그리 익숙하지도 않던 시절에 금동이를 양자로 들이는 에피소드를 그렸던 박정수 작가 덕분에 최불암은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으로 가장 인생에서 보람된 일을 하게 됐다고도 밝혔다. 당시 워낙 화제가 되고 마치 그 일을 최불암이 한 것처럼 칭찬받았던 터라, 실제로 그 책임감을 느끼고 현실에서 어린이 후원에 앞장서게 됐던 것. 진정성을 담은 작품이 어떻게 현실을 바꿔나가는가를 이 에피소드는 담고 있었다.

종영한 지 19년이 흐른 지금, 왜 다시 <전원일기>를 들여다보느냐고 혹자는 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큐플렉스>가 4부작으로 준비한 그 첫 회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현재에 던지는 질문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우리네 드라마는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을 만큼 급성장했다. 산업의 규모도 수백 억 제작비가 투입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그 화려함에도 남는 헛헛함이 존재한다. 그것은 제작비와 투자와 인기, 손익으로만 계산될 수 없는 드라마가 담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깊이 같은 것들이 제작 과정에서부터 결과물까지 담겨지는 작품들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된다.

마치 도시가 화려해질수록 저편으로 소외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그 각박한 삶에서 고향의 따뜻함이 가졌던 그 가치를 찾아내게 되듯이, <전원일기>는 2021년에 그런 의미와 가치로 우리 앞에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출연자들이 느끼는 소회만큼, 그걸 보며 자라왔던 시청자들의 소회가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원일기2021’이 마치 진짜 고향 같은 따뜻함으로 현재에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