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동거’ 능수능란한 장기용, 얼굴 하나로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간동거’ 장기용이 코믹·멜로·공포까지 다채롭게 끌고 가는 방식
[엔터미디어=정덕현] 한 가지 얼굴처럼 보이지만, 시시때때로 그 얼굴이 주는 감정이 다른 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tvN 수목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 신우여라는 999살 먹은 구미호 역할을 연기하는 장기용 이야기다. 그의 얼굴은 늘 진지해보이지만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은 때론 코믹하고 때론 달달하며 때론 섬뜩하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
현실에는 없는 존재 999살 먹은 구미호가 22살 이담(혜리)과 어쩌다 인연을 맺게 되고 사랑을 하게 되는 <간 떨어지는 동거>는 장르적으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의 코믹, 멜로와 더불어 공포가 섞여있다. ‘인간의 간을 빼먹는다’는 이야기부터, 정기를 빨아 먹고 그래서 결국 죽게 만든다는 구미호라는 존재가 주는 공포감을 바탕으로, 이를 슬쩍 뒤집는 방식으로 코믹과 멜로가 그려지고 있어서다.
구미호와 사랑에 빠지는 이담 역할의 혜리가 가진 비중이 적지 않지만, 사실상 드라마의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은 장기용의 몫이다. 처음 그를 만난 이담이 공포로 두려워하다가, 의외의 달달함과 배려에 설렘을 느끼고 그 이질적인 존재들의 관계 속에서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드는 건, 신우여가 그런 다양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기용은 그런데 이 역할들을 ‘진지한 얼굴’ 하나로 소화해나간다. 즉 눈빛이 변하거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모습으로 몰입할 때는 순간 이성을 잃고 이담을 잡아먹을 것 같은 공포감을 만들어내지만, 특유의 그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담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세상 달달한 미소가 피어난다. 하지만 너무 진지해서 느끼할 정도의 말을 할 때는 저 피식대학의 최준(김해준)이 떠올라 웃음이 터진다.
그래서 신우여가 이담과 공식적으로 사귀겠다 선언하지만, 어쩐지 통제력을 잃어가는 자신으로 인해 이담이 곤경에 처할 것 같아 ‘거리두기’를 하는 상황은, 보기에 따라 섬뜩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며 때론 코믹하기도 하다. 즉 그것이 구미호라는 존재와 사랑을 나누는 인간이 사실상 정기를 빨릴 수 있다는 상황으로 집중하면 섬뜩해 보이지만, 그래서 거리를 두려는 신우여의 마음과 이담의 안타까움은 애틋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황당해 보이는 이색적인 상황 자체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의외로 웃음이 터지는 코믹함이 있다.
사실 신우여 역할을 하는 장기용은 이러한 다양한 장르적 감정들이 뒤섞여 있는 이 작품 안에서 그다지 애써 과잉된 감정들을 드러내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999살을 산 구미호라는 캐릭터에 걸맞게 웬만한 일에 그다지 놀라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그런 진중한 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얼굴이 너무 진중해서(심지어 표정이 없어 보이기도 할 정도로)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거나 혹은 세상 달달한 미소를 던지거나 혹은 활활 타오르는 눈길을 던질 때 그 감정은 더 잘 드러난다.
이것은 마치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이기 때문에 미세한 선을 그어도 그것이 무얼 뜻하는지 알아채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렇게 자신의 얼굴이 주는 느낌을 잘 이해하고 특정 상황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부여하고 있다는 건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간 떨어지는 동거>에서 장기용이라는 배우가 주목되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