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차차’ 신민아는 물론, 시청자들도 김선호에 빠져드는 이유

널 그냥 좀 놔둬...‘갯차차’, 악다구니 세상에 여행 같은 편안함

2021-09-12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세상은 지독하다. 스펙사회로 태생부터 그 삶이 정해지고 어떤 노력을 해도 수저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 그것을 넘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정의 따윈 없다. 그러니 악을 이기려면 스스로 악이 되어야한다. 때리면 맞서 때려야 하고, 죽이면 죽여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비정한 룰이고, 그 룰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요즘 드라마를 보다보면 마치 이런 말들을 속삭이는 것만 같다. tvN <악마판사>는 공정이나 정의 따위는 없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악마가 되어 저들과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판사의 이야기를 그렸고, <빈센조>는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악의 카르텔을 향한 진짜 마피아 변호사의 처절한 응징을 그렸다. <하이클래스>나 SBS <펜트하우스> 같은 드라마들은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찬 가진 자들의 세상과, 그 미친 듯한 악다구니를 쏟아낸다. 그래서 좀 피곤하다. 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tvN 토일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는 세상이 피로하고 심지어 드라마들까지 피로한 시청자들에게 잠시 내려놓고 저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을 쳐다보라고 속삭인다. 그곳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지면 조금이라도 젖을까봐 전전긍긍하는 도시인들과는 달리, 젖으면 좀 어떻고, 조금 젖는다고 큰 일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홍반장(김선호)이 있다. 다 젖어 버렸다며 투덜대지만 막상 홍반장과 한바탕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는 도시인의 표상 같은 윤혜진(신민아)의 입가에는 어느새 웃음이 피어난다.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던 도시에서는 잊고 있었던 그 웃음이.

<갯마을 차차차>의 시청률은 매회 고공행진 중이다. 6.821%(닐슨 코리아)의 결코 낮지 않은 시청률로 시작한 드라마는 매회 상승해 5회에는 9.996%로 10%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아르곤>, <왕이 된 남자> 등을 공동집필 했던 신하은 작가는 만만찮은 내공을 가졌지만, 그래도 <갯마을 차차차>가 단독으로는 첫 입봉작이나 마찬가지다. <오 나의 귀신님> 같은 작품을 연출한 유제원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에는 단단한 내공을 가진 인물이다. 여기에 KBS <1박2일>로 선한 이미지를 가진 김선호에 로코퀸 신민아가 더해지고, 최근 라이징스타로 떠오른 이상이 같은 배우까지 참여했다. 그렇지만 <갯마을 차차차>가 대작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것은 토일 비슷한 시기에 방영을 시작한 JTBC <인간실격>과는 사뭇 비교되는 지점이다. <인간실격>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행복>, <천문> 등등 만만찮은 영화의 필모그라피를 가진 허진호 감독과, <나의 사랑 나의 신부>, <행복>, <건축학개론> 등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김지혜 작가가 드라마에 도전한 작품이다. 여기에 전도연, 류준열 같은 믿고 보는 배우들이 포진했다. 당연하게도 이 드라마는 완성도가 높다. 대본도 연출도 연기도 빠지는 게 없다. 인간의 자격에 대해 묻는 그 메시지도 묵직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갯마을 차차차>와 정반대로 갈수록 조금씩 떨어진다. 첫 회 4.1%로 기대감을 높이며 시작했던 드라마는 3.3%까지 떨어졌다. 이유는 단 하나다. 작품의 완성도나 깊이는 나무랄 데가 없는데, 시청자들이 챙겨볼 만큼의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무채색에 가깝게 그려지는 이야기와 인물들의 비극적인 정조는, 삶을 통찰하려는 작가의 진지하고도 깊은 시선이 느껴지지만 삶에도 또 너무 무거운 드라마들에도 지친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피로하게 다가온다. <갯마을 차차차>의 밝은 햇볕과 환한 웃음이 주는 경쾌함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갯마을 차차차>는 마치 잠시 떠나는 여행 같은 드라마다. 공진이라는 가상의 바닷가 마을은 코로나19에 지치고, 경쟁적인 도시의 삶에 지친 시청자들이 잠시 떠나 머물고픈 그런 공간으로 다가온다. 도시의 삶에 지쳐 그 곳으로 가 치과를 개원하게 된 윤혜진은 지친 도시인들의 대리경험을 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공진의 다소 느릿느릿 굴러가지만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표징하는 홍반장이 있다. 윤혜진이 그에게 빠져드는 과정은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는 저 공진이라는 바닷가 마을의 삶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치에 공감하는 과정이 된다.

서울대를 나오고도 왜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냐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윤혜진에게 홍반장은 “시야가 좁아도 너무 좁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돈, 성공 말고도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이 있어. 행복, 자기만족, 세계평화, 사랑. 여하튼 인생은 수학공식이 아니라고. 미적분처럼 계산이 딱딱 나오지 않을뿐더러 정답도 없어. 그저 문제가 주어졌고 내가 이렇게 풀기로 결심한 거야.”

소나기를 만나 윤혜진을 데리고 바닷가로 뛰어온 홍반장이 비에 홀딱 젖었다며 찝찝하고 꿉꿉하다는 윤혜진에게 말한다. “그러면 어때. 그냥 그런대로 널 그냥 좀 놔둬. 소나기 없는 인생이 어딨겠어. 이럴 때는 어차피 우산 써도 젖어. 이럴 땐 아이 모르겠다 하고 그냥 확 맞아버리는 거야. 그냥 놀자 나랑.”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 그렇게 떠나자고, 놀자고 내미는 손을 원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잘못된 세상을 고쳐보겠다고 아득바득 애쓰다 지친 우리에게 내미는 손. 홍반장 같은 존재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