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제작비 6억원, 풍요 속 마주한 김태호PD의 숙명(‘먹보와털보’)
‘먹보와털보’, 반응 엇갈릴수록 김태호의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0년 그 어떤 예능보다 뜨겁고 수상실적도 화려했던 MBC 예능 <놀면 뭐하니?>는 현재 유의미한 평론을 하기 까다로운 프로그램이다. 추구하는 정서, 재미, 전략이 이미 2020년 여름부터 계속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캐’에 이어 새로운 동력으로 삼은 ‘백투더 무한도전’은 추억과 복고에 천착하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새로운 재미나 트렌드의 관점, 예능의 흐름 등의 잣대로 시청의 즐거움을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을 펼치기 어려운 이유다.
현재 연말을 맞이해 준비 중인 ‘도토리 페스티벌(이하 도토페)’도 앞선 유산슬의 트로트를 제외하더라도 ‘싹쓸이’ ‘환불원정대’ ‘겨울노래구출작전’ ‘MSG워너비’ 등에 이은 또 한 번의 추억소환 음악 프로젝트다. 1990년대를 넘어서 2000년대 싸이월드 감성, 즉 미니홈피의 BGM로 자신의 감정과 취향을 드러냈던 그 시절을 찾아간다. 2000년대 전성기를 보낸 성시경, 써니힐, 아이비, 윤하, 에픽하이 등이 함께하고, 유재석, 미주, 하하 등이 혼성그룹 ‘토요태’를 결성해 그 시절의 추억 속으로 돌아가자고 손짓한다. 추억을 찾아가는 여정과 유재석과 멤버들이 반가움에 취하는 반응 또한 반복된다. 발견되는 반가운 추억과 하나하나 퀘스트를 이뤄가면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의 성장 서사까지 너무나 익숙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따온 공식이다.
2014년 말 <무한도전>의 ‘토토가’ 프로젝트가 1990년대 바이브가 방송가를 점령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니 사실상 <무한도전>을 잇는 <놀면 뭐하니?>가 추억의 가요 콘텐츠의 원조인 것은 맞다. 그러나 2022년을 앞둔 지금까지도 그때의 비즈니스 모델로 끊임없이 도돌이표를 그리고 있다면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상파 예능과 유재석의 건재함을 과시했던 프로그램이 시청률과 대중문화 트렌드가 괴리되는 현상에 일조하는 중이다.
물론, 변화도 감지된다. 노래를 통해 추억을 좇는 한편 캐릭터쇼의 부활을 위한 도전이다. 중년 남성들이 아니라 여성 멤버들을 포함해 시대적 흐름에 맞춘 점도 나름 신경 쓴 부분이다. 그러나 ‘부캐’ 대신 <무한도전>의 캐릭터쇼를 가져 온 ‘놀면 뭐하니+’체제가 본격화된 이후 시청률은 줄곧 하락세다. 흥행 가능성이 높은 추억소환 음악 예능과 캐릭터쇼 부활을 위한 시도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공통인수는 올드함이다.
이런 상황에 MBC를 떠나기로 한 김태호 PD의 첫 탈 MBC 프로젝트이며, 지상파 PD들의 첫 넷플릭스 연출작인 <먹보와 털보>에 큰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거취 자체가 가장 큰 홍보 효과인 셈이다. 넷플릭스 예능의 잔혹사에도 불구하고 첫 주간 한국 콘텐츠 1위에 단숨에 올랐으니 김태호 PD에 대한 여전한 높은 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빡빡한 제작 스케줄, PPL촬영을 위해 유재석이 따로 스케줄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제작비 수급이 선결과제인 지상파의 제작 환경을 벗어난 김태호 PD는 <먹보와 털보>에서 그간 잘 해온 것과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동시에 선보인다.
오랜 동료들이기도 한 비와 노홍철의 관계를 포착하는 것은 김태호 PD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다. 친구, 오토바이, 달리는 질주, 발견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여유 등 기존 여행 예능에서 봤던 키워드와 반은 겹치고 반은 새롭다. 예능의 재미에 정서적 감흥을 새롭게 제안한 당사자로서 로망을 다루는 접근도 흥미롭고,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촬영과 음악 활용, 자막 디자인 등은 기존 방송사 예능에서는 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지역의 멋진 풍경과 여정은 큰 TV화면으로 볼수록 더 좋은 그야말로 TV용 콘텐츠이자 대리만족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회당 6억 원에 총 10부작으로 제작되는 풍요 속에서 tvN <바퀴 달린 집>과 같은 기존의 여행예능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바이크라는 신선한 로망, 영화 <모가디슈> 등에 사용한 촬영기법과 장비, 드론을 등을 통해 여유가 있다면 영상미와 디자인을 얼마나 높은 수준으로 생산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물론, 엄청나게 흥미로운 볼거리, 새로운 볼거리는 아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건축이 아니라 잘 디자인된 리모델링에 가깝다. 속도감을 바탕으로 뻥 뚫린 듯한 여행의 대리만족과 힐링의 정서를 선사하지만, BBC <털보 라이더>, EBS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트립 투 이탈리아>, 웨이브 <바이크 원정대> 등 바이크를 비롯해 탈것을 타고 음식 기행을 하면서 우정과 인생에 대해 돌아보는 버디 콘텐츠가 놀랍도록 새로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오토바이에서 내려왔을 때의 장면들은 캠핑, 요트, 낚시, 먹방, 제주의 이효리, 강아지, 연예인 인맥, 먹방, 기존 익숙한 캐릭터 등 예능에서 늘 보던 대리만족의 소재들이다. 특혜 논란과 과도한 외침에 대한 불호의 피드백을 비롯해 재미 여부에 대한 왈가왈부가 시작되는 이유다.
<먹보와 털보>는 기술적 완성도가 높고, 떠나고 싶게 만드는 정서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대중이 김태호 PD에게 기다렸던 건 기술이 아니라 스토리, 혹은 인물이다. 새로운 무엇, 따분한 예능의 패러다임을 바꿀 그 무엇에 대한 기대가 어쩌면 김태호 PD가 여전히 탑티어 예능PD이자 가장 충성도 높은 팬을 보유한 이유다. <먹보와 털보>에 대한 모든 평가는 어쩔 수 없이 김태호 PD의 숙명과도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다.
요즘과 같은 시국에, 한국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 시대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면면을 알리고자 하는 기획의도와 노골적인 넷플릭스 찬양은 기획된 노림수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김태호 PD는 “한국에 대해 보다 새로운 호기심이 생기길 기대해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처럼 높은 에너지레벨과 끼를 발산하는 노홍철은 사실 몇 해 전 서핑을 떠났던 MBN <바다가 들린다>에서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노홍철의 외침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이러한 노골적인 의도와 오랜 기대의 간극에서 만들어지는 서걱거림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기획 의도는 은은할수록 세련되고, 메시지와 패키징은 단순할수록 명료해진다. 기존 여행예능에서 변주를 준 점은 높이 사지만 해외진출이라는 노골적인 노림수와 새로운 예능을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기대가 딱 맞아 떨어지진 않는다. 따라서 <놀면 뭐하니?>의 답보 상태가 지속될수록, 새로우면서도 익숙하기도 한 <먹보와 털보>의 반응이 엇갈릴수록 김태호 PD의 다음 행보에 더욱 더 관심이 쏠리게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넷플릭스,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