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니 충격적 멘트, ‘골때녀’PD가 일주일 전 남긴 수상 소감

‘골때녀’ 노골적 조작 방송, 제작진의 무개념·과욕이 만든 대참사

2021-12-25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언젠가 경기 중에 저희 이천수 감독이 이런 얘길 했어요. 축구는 상상하는 게 이뤄지기 때문에 멋있는 스포츠라고. 작년 이맘 때 한 줄 상상에 불과했던 <골때녀>라는 아이디어가 지금의 현실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분들의 노력과 고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많이 계신 우리 아홉 팀의 일흔 명이 넘는 선수들과 감독님들, 그리고 언제나 제 옆에 있어주는 최고의 작가님들, 연출팀, 아나운서, 그리고 이 시간에도 편집실에서 고생하고 있을 우리 식구들과 촬영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뛰어주는 모든 스텝분들과 이 영광 나누고 싶고요...저희 다음 주에 시즌2 최고의 빅매치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경기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난 18일 <SBS 연예대상>에서 최우수 프로그램상을 받은 <골 때리는 그녀들>의 이승훈 PD는 이런 수상 소감을 내놨다. 이날 대상은 <미운 우리 새끼> 팀에 돌아갔지만 사실상 2021년 <SBS 연예대상>의 주역은 무려 8관왕을 가져간 <골 때리는 그녀들>이 아닐 수 없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최우수 프로그램상은 물론이고, 최우수상, 우수상, 올해의 예능인상, 감독상, 방송작가상, 베스트커플상, 신인상을 두루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골 때리는 그녀들>의 방송 조작 논란이 불거졌고, 제작진은 결국 이를 인정했다. “방송과정에서 편집 순서를 일부 뒤바꾸어 시청자들께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힌 공식 사과문을 낸 것. 논란이 제기된 방송의 경기는 놀랍게도 이승훈 PD가 <SBS 연예대상> 수상 소감에서 관심을 부탁드린다 언급했던 ‘최고의 빅매치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경기였다. 결과적으로 조작 방송이라는 게 밝혀진 지금 되돌아보면 충격적인 멘트가 아닐 수 없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은 건 놀랍고 드라마틱한 경기 때문이 아니었다. 축구에 진심인 출연자들의 피, 땀, 눈물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스포츠는 화려한 경기만이 아니라, 그 진정성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사실을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어서였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 출연자들은 몸 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건 일부러 연출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의 진정성을 제작진의 개념 없는 과욕이 한 방에 무너뜨려버렸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대담한 것인지 혹은 무모한 것인지 경기 내용을 마구 편집해 ‘각본 있는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간 이 프로그램에 열광한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든 심각한 기만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제작진은 이 사태가 안일함이 불러온 결과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그간 수상소감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그토록 강조했던 ‘진정성 운운’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땀 흘리고 고군분투하며 경기에 임하는 선수 및 감독님들, 진행자들, 스태프들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편집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고 공식사과문을 통해 밝혔지만 이걸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선수들과 감독들, 작가부터 연출팀, 편집실에서 고생할 식구들, 스텝들의 노력과 고생은 제작진의 조작 편집으로 인해 모두 휘발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제작진은 배성재, 이수근이 “이번 일과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특히 배성재에게 집중됐다. 중간 중간 들어가는 스코어 언급이 사실상 조작에 가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다. 특히 그간 스포츠 아나운서로 신뢰감을 쌓아온 그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 후폭풍은 강했다. 결국 배성재는 이것이 ‘추가녹음’을 ‘기계적으로 읽은 것’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조작에 사용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걸 확인하지 않은 것도 그의 책임인 건 분명하다.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 한 일탈로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골 때리는 그녀들>의 방송 조작은 심각하다. 해당 프로그램의 신뢰성을 훼손한 것을 넘어서 방송사의 신뢰까지 깎아먹는 상황인데다, 이 프로그램 하나에 얽혀 있는 이들 모두가 영향을 받는 후폭풍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우수 프로그램상’을 받으며 최고의 위상을 떨치던 프로그램이 1주일도 안되어 최악의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제작진의 무개념 과욕으로 인한 방송 조작이 만든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