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나는 ‘사내맞선’, 때로는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

뻔하다고? 고구마 1도 없는 안효섭과 김세정의 로코(‘사내맞선’)

2022-03-22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월화드라마 <사내맞선>에는 대놓고 ‘뻔하다’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사실이다. 이 드라마는 사내연애에 사장님과 직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흔한 밀당이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다. 그런데 보통 ‘뻔하다’는 수식어가 붙는 로맨틱 코미디들과 달리 <사내맞선>은 상당히 다른 반응들이 잇따른다. ‘그래서 재밌다’는 것. 도대체 <사내맞선>의 이런 반응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된 걸까.

은근히 신하리(김세정)를 무시하며 연애조차 못할 것처럼 생각하는 친구들 앞에 강태무(안효섭)가 나타나 “자기야”라고 부르는 장면은 익숙하다. 그리고 스위트하게 얼굴을 쓰다듬으며 “오래 기다렸어?”라고 묻는 강태무. “반갑습니다. 하리씨 남자친구 강태무라고 합니다.” 이 말에 신하리가 놀라는 표정으로 돌아보고 두 사람은 친구들 앞에서 연인인 척 연기를 한다. 물론 신하리는 연기지만, 강태무는 실제다. 그는 어쩌다 신하리를 진짜 좋아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그 전개 과정을 어느 정도는 예측한다. 흔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너무나 많이 봤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의 웹툰 원작 역시 이런 장면들을 마치 흔한 로맨틱 코미디를 패러디하는 것처럼 활용했을 게다. 그 장면은 다소 과장되어 있고 또 그래서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걸 지나치게 진지하게 담아내는 건 그 자체로 웃음을 준다. 과장되고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면이 등장해도 <사내맞선>이 재미있게 다가오는 건 바로 이 ‘아는 맛’ 때문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맛.

그런데 그 아는 맛을 <사내맞선>은 진짜 웹툰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표현해 보여준다. “(메뉴판을 들고)이런 거 보지 말고 나만 봐. 자길 향한 내 사랑과 이 카드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한도가 없다는 거. 한도가 없어 그냥.” 친구들 앞에서 과장되게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강태무의 이 장면에는 ‘돈지랄남!’이라는 웹툰의 한 장면 같은 자막이 과장되게 들어간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돈다발이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화장실 간다는 신하리를 굳이 따라나서며 “자기가 안 보이면 내가 불안해서 그래. 요기 앞에 까지만 바래다줄게.” 하는 강태무에게 ‘키링남’이라는 자막이 붙고, 지나는 사람과 부딪치려 하자 “조심 좀 하시죠!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당신 내 여자한테 흠집 냈으면 어쩔 뻔 했어?”하고 따지는 강태무에게 ‘대형견남!’이라고 자막을 붙이고 반려견처럼 강태무를 CG 연출한 장면도 마찬가지다.

너무 흔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이라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광경이지만, 그걸 오히려 과장되게 패러디로 담아냄으로서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드는 것. 이러한 연출의 장치는 이 드라마에서 강다구(이덕화) 회장이 딱 봐도 막장드라마처럼 보이는 드라마를 애청하는 광경을 통해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그 드라마 속 금희라는 인물에 푹 빠져 있는 강다구 회장은 그 이름을 따서 ‘신금희’라고 자신을 소개한 신하리에게 호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신금희와 신하리가 같은 인물인 줄 모르고 신하리를 만나는 강태무를 질책한다.

강태무 역시 처음에는 이 둘을 구분 못하다가 결국은 그들이 동일인물이라는 걸 알아챈다. 화가 나 신하리를 계속 괴롭히지만, 그러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자신이 진짜 신하리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 같은 이야기지만, 그 공식을 마치 ‘아는 맛’을 전하듯 연기와 연출로 담아내는 것. 그것이 <사내맞선>이 뻔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재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온전히 로맨틱 코미디의 맛을 내는 이 드라마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고구마가 1도 없다는 사실이다. 정체를 두고 빚어지는 갈등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건 신하리와 강태무가 하는 코미디로 그려져 답답하기보다는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전해진다. 강태무가 대놓고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 신하리가 그를 거절하면서 던지는 대사도 알고 보면 에둘러 전하는 사랑고백이다.

“왜 자꾸 사람을 힘들게 해요. 왜 자꾸 잘해줘서 막 생각나게 만들고, 안될 거 뻔히 아는데 혹시나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자꾸 고민하게 만들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 내가 뻔히 다 아는데 왜 자꾸 욕심나게 만들어요? 나 좋아하지 말아요. 더는 다가오지 말아달란 얘기예요.” 뻔히 아는 대사고 이 뒤에는 분명 두 사람이 키스로 사랑을 확인할 거라는 걸 예감하고 실제로 키스하는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 갈등 요소나 그것이 풀어지는 과정도 질질 끄는 일 없이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사이다 드라마. 정말 아는 맛이 더 무섭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