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망한 웹드와는 달랐던 ‘사내맞선’이 구사한 영리한 전략

‘사내맞선’, 웹드 아닌 ‘툰드’의 재미란 이러한 것

2022-03-22     박생강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월화드라마 <사내맞선>은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지만 기존의 웹툰 원작 드라마와는 보는 맛이 다르다. 또 수없이 제작되고 수없이 망하는 가벼운 ‘웹드’와도 판이하게 다르다. 오히려 <사내맞선>은 이야기 자체는 평범한 로맨스드라마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주인공 신하리(김세정)와 멋지지만 연애에는 서툰 재벌남 강태무(안효섭)의 로맨스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맞선>은 흔한 로맨스와는 다른 재미를 준다.

그 이유는 <사내맞선>이 웹툰 월드에 익숙한 대중의 입맛에 딱 맞는 메뉴기 때문이다. 친절하게도 <사내맞선>은 첫 장면부터 웹툰 세상을 실사로 옮긴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공항에서 입국하는 강태무의 모습은 만화체 2D에서 어느 순간 만화주인공과 흡사한 외모와 ‘기럭지’의 3D 안효섭 강태무로 변한다. 시청자는 그 순간 앗, 이것은 대놓고 웹툰의 만화적인 요소를 실사판으로 가져온 ‘툰드’라고 깨닫게 된다.

이후 흡사 KBS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의 이영국(지현우) 말투가 떠오르는 강태무의 말투 또한 <사내맞선>에서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신사와 아가씨>에서는 신파조로 들리던 문어체 대사치기가 <사내맞선>에서는 의도적으로 과장된 코믹한 설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웹툰의 대사를 소리 내어 읽는 맛도 느껴지고 말이다. 말투만이 아니라 강태무의 과장된 몸짓이나 표정도 마찬가지다.

또 여주인공 신하리를 연기하는 김세정 역시 ‘툰드’ 주인공에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준다. 역시 웹툰 원작인 <경이로운 소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그녀는 <사내맞선>의 과장되면서도 현실적인 여주인공의 표정들을 꽤 잘 살려낸다. ‘툰드’의 만화적인 리얼리티를 살리는 동시에 현실적인 또래 여성의 리얼리티까지 담아내는 것이다.

두 배우 외에도 수많은 등장인물이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만화적 인물을 만화적으로 연기한다. 심지어 강태무의 할아버지이자 GO그룹 회장인 강다구 역의 이덕화 역시 그의 캐릭터를 닮은 만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더구나 <사내맞선>은 기존의 드라마와 속도감이 다르다. 과거 SBS <아내의 유혹>처럼 진행이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드라마를 보는 속도보다 웹툰을 볼 때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에 맞춘 템포감이 있다는 뜻이다. 인물들의 대사는 다소 빠른 편이고, 화면 전개는 갑자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지만 재빠르게 넘어간다.

대신 이렇게 만화적 설정들을 잘 살리면서도 원작이 품고 있는 전형적인 로맨스 구도의 재미는 놓치지 않는다. 짜고 치는 로맨스 고스톱 같은 느낌도 들지만 속도감 있게 패가 짝짝 맞아 돌아가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가 있다.

기존의 웹툰 원작 드라마는 드라마적 현실감을 살리려고 꽤 애를 썼다. JTBC <이태원 클라쓰>처럼 성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많은 작품들이 망했다. 만화와 드라마의 경계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맞선>은 과감하게 웹툰의 세상을 드라마로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게 만화의 실사판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장면도 하하 웃고, 넘어가게 될 정도. 웹툰 원작 없이 웹툰 스타일의 맛만 흉내 낼 뿐 이도저도 아닌 혼란으로 어지러워 재미없는 동시간대 드라마 KBS <크레이지 러브>보다 훨씬 영리한 전략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