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바른 강호동에게 남은 마지막 탈출구

2013-11-08     김교석


강호동, ‘맨발’ 폐지가 또 다른 기회인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다시 한 번 강호동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2011년 9월 세금 과소 납부 논란을 계기로 잠정 은퇴하고 2012년 8월 SM C&C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화려하게 컴백한 지 1년이 지났다. 그간 그가 받아든 성적표는 폐지 프로그램이 3개, 복귀 후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프로그램인 <우리동네 예체능>은 6%대의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예능 무주공산 화요일 밤임을 감안하면 수치보다 더 좋지 않은 성적이다. 오늘날 예능 트렌드와 가장 동떨어진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스타킹>만이 그의 이름에 걸맞은 성적을 내고 있다.

강호동의 리얼 버라이어티임을 전면에 내세웠던 <일요일이 좋다-맨발의 친구들>의 폐지는 확실하고도 다급한 위기 신호다. 지난 4월 21일 해외 로케라는 대형 스케일로 시작한 <맨발의 친구들>은 몸으로 고생하는 리얼 미션, 팀워크의 파이팅이 필요한 다이빙 대회, 강호동의 또 다른 특기이자 ‘먹방’ 트렌드를 고려한 집밥 먹기 프로젝트 등 강호동이 판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으로 승부를 봤으나 죄다 실패했다. 웃음 대신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냐는 의문을 샀다. 무엇보다 이런 일련의 실패들은 강호동이 오늘날 예능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캐릭터라는 의구심의 증거로 쌓이고 있다.

그런데 정확히 할 것은 예능계 쌍두마차로 군림하던 그가 잠정은퇴 후 복귀에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강호동표 예능이라는 독자적인 장르를 구축할 만큼 강력한 스타일을 갖추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은퇴 이전부터 <무릎팍 도사>나 <1박2일>과 같은 그의 대표작들은 이미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이것은 강호동이 천하장사 출신으로 에너지로만 웃기는 MC가 아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강호동이 강력한 에너지로 지배하던 쇼프로그램시대에 이어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를 외치며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서도 전성기를 이어가고, <무릎팍 도사>를 통해 새로운 토크쇼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와 호응을 얻은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좀 더 리얼하고 누구보다 직설적으로 파고드는 속 시원한 이야기들, 그간 방송에서 삼갔던 금기의 수위를 본격적으로 무너트린 인물이 바로 강호동이다. 이런 점들이 그 특유의 천하장사 에너지와 결합해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며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이른바 대한민국 예능이 오늘날 관찰형 예능으로까지 진화해 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2013년은 연예계 이슈와 정치 이슈를 예능화한 <썰전>, 설레는 짝짓기가 아닌 섹슈얼한 현실 연예이야기를 재미의 소재로 삼는 <마녀사냥>이 방송되는 시절이라는 점이다. 그 덕분에 김구라가 어느새 최고의 MC대우를 받고 있다. 강호동의 정서와 스타일은 더 진짜, 더 세련된 쇼가 나타나자 과장스럽고 거북해졌다. 그는 에너지로 밀어붙이지만 기본적으로 예의바르고 팀워크와 체면을 중시하는 타입이다.

강호동은 삐딱하거나 이기적인 캐릭터와 거리가 멀며 캐릭터가 아닌 실제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는 코미디에는 익숙지 않다. 입 큰 여자가 좋다는 남자 연예인의 말에 ‘자신감이 대단하신가 보네요’라고 받아치는 신동엽이 부활하고, 삐딱하게 앉아 찡그리고 게스트를 쏘아붙이는 김구라가 인기를 얻고, 삶의 일각을 전시하는 관찰형 예능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에 강호동식 캐릭터와 스타일은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해야 했던 서커스쇼와 같은 처지가 됐다. 에너지만 남고, 정서는 더 이상 장점이 아니게 됐다.



그런데 강호동의 위기가 그리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예능 담론을 생산하는 세대는 분명 따로 있지만 ‘시청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폭이 넓기 때문이다. 성공의 로직도 정해져 있지 않다. 온갖 심령술과 우연을 통해 등장인물을 죽여 나가도 시청률 15%는 거뜬한 드라마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강호동은 다음 도전에 생각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콘셉트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가다듬고 그 판을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청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쪽에서 길을 찾는 등 ‘변화의 길’ 자체를 새롭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

어떻게 보면 예능 불모지는 편성표가 아니라 시청자가 타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욕을 먹는 종편의 집단 토크쇼가 인기를 얻는 것이나, 6시대 정보 프로그램, 8시대 드라마가 항상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는 것도 강호동이나 그와 새로운 방송을 함께하길 생각하는 제작진 입장에서는 염두에 둘 부분이다. 아직까지는 다른 채널에 비해 다양한 세대를 아울러야 하는 공중파라는 점에서 종편과 케이블의 틈새를 역으로 노릴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간 쌓아온 예의바른 이미지는 여전히 어떤 세대에선 큰 호감을 가질만한 매력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맨발의 친구들>의 폐지는 강호동 개인에게 뼈아픈 전적으로 남겠지만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기회이다. 여전히 강호동은 예능 관계자들 섭외 1순위에 있는 제작진이 기댈 수 있는 몇 안 되는 MC이자 불확실한 미래에 성공을 보장할 확실한 카드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성공을 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 가능성도 그 어떤 예능 선수보다 높다. 이는 프로그램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 강호동에게 있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자기계발서의 그저 그런 주문이 아닌 셈이다.

최근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강호동은 석주일을 만나면서 새로운 관계와 역할을 체험하고 있다. 농구 초보 강호동은 스승 석주일의 ‘똥개론’을 충실히 소화하면서 웃음을 만들고 성장 스토리의 기반을 다졌다. ‘인생 뭐 있어’를 모토로 삼은 듯한 석주일의 거침없는 말투와 지저분한 경기매너 그리고 나름의 카리스마를 가진 코치와 선수라는 관계는 항상 큰형 노릇을 하던 강호동이 그동안 겪지 못한 캐릭터와의 만남이다. 실제로 석주일은 캐릭터가 아니라 이지승을 위시한 상남자 군단 고대에 맞서 곱상한 연대의 허슬과 몸싸움을 책임졌던 과거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 석주일에게 에너지와 허슬을 맡기고 강호동은 농구 앞에 자세를 낮춤으로서 예체능 농구팀의 성장 스토리도 본격화됐다.

그리고 이는 강호동 본인의 현재 캐릭터에게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가 이 위기에서 빨리 탈출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자리에서 잘 내려와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생각을 달리해 다양한 기회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에 맞는 캐릭터로의 변신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지금 강호동은 변신보다는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시 치고 올라갈 파도를 마중해야 할 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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