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괴물들과 맞서 싸운 이들의 불꽃 추적기(‘사이버 지옥’)

‘사이버 지옥’, 진정성이 만든 극영화 같은 다큐의 놀라운 성취

2022-05-21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 ‘당신의 사진이 도용됐으니 링크로 들어가 확인해보세요.’ 넷플릭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마치 영화 <서치>의 한 장면 같은 SNS 메시지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날아든 메시지를 믿지 못하는 피해자는 ‘네? 장난치지 마세요ㅋㅋ 누구세요?’라고 묻지만 반신반의하며 그 링크를 눌러 버린다. 그러자 뜨는 사진들. 갑자기 저편에서 링크를 누른 피해자의 개인정보들을 메시지로 보낸다. 이름, 주소. 아마도 어린 피해자는 섬뜩한 공포를 느꼈을 게다. ‘지금부터 내 말 안들으면 이 사진 학교에 뿌린다.’ 순식간에 고압적인 태도가 느껴지는 메시지가 날아들고 그건 이 피해자가 ‘사이버 지옥’에 갇히게 됐다는 걸 말해준다.

<사이버 지옥>은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N번방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개인정보를 빌미로 사적인 사진과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주로 10대 어린 청소년들에게 끝없이 성 착취물을 찍어 올리게 만들었던 충격적인 사건. 이른바 박사방을 운영했던 조주빈과 갓갓으로 불린 문형욱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사건을 추적한 ‘추적단 불꽃’, 한겨레의 김완, 오연서 기자, JTBC <스포트라이트>의 최광일 프로듀서와 장은조 작가, 사이버 수사대 경찰들의 뜨거운 추적기를 담았다.

이미 알고 있다 생각한 이 사건이 사실 알려진 건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이 다큐 영화는 보여준다. 처음 사건을 접하고 기사를 썼다가 박사에게 지목되어 SNS 테러를 당했던 김완, 오연서 기자의 이야기는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긴장감을 만들었고, 역시 마찬가지로 저들에게 이 아이템으로 방송을 내면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던 <스포트라이트>의 최광일 프로듀서는 결국 방송을 내고 신상이 공개된 피해자 앞에서 미안함에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피해자가 오히려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 위해 제작진을 독려했다는 이야기는 먹먹한 느낌까지 전했다.

<사이버 지옥>은 처음 기자들이나 프로듀서들조차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믿기 어려워했던 것처럼, 실제 벌어진 사건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추적해가는 것만으로도 깊은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몰입감은 단지 재미와 흥미의 차원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이 사건의 실체와 이를 추적했던 이들의 진심에 시청자들이 동승하는 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그 의미를 잃지 않는다.

놀라운 건 사건 자체가 갖는 예민함 때문에 자칫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이 다큐 영화는 충분히 인지해가며 그 안전장치들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모노톤의 애니메이션으로 채워 넣은 건 그래서다. 그 애니메이션은 보다 진지하게 이 사건이 보여주는 사회적 의미들을 형상화한 또 하나의 예술 같은 느낌으로 다큐멘터리에 담겼다.

충격적인 사건과 범죄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빠지는 함정은 그 범죄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이러한 영상 자체가 선정적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이버 지옥>은 마치 극영화 같은 연출과 스토리 전개로 흥미진진한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선정성의 함정을 넘어선다. 그건 이 추적기에 담겨진 실제 추적자들의 진정성이 시종일관 느껴지는데다, 최진성 감독이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고 이를 의미화하는 노력을 더함으로써 만들어진 균형감각 덕분이다. 극영화 같은 다큐의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