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심’, 어째서 이준·장혁보다 강한나가 돋보이는 걸까

주도권 움켜쥔 강한나, 이준도 장혁도 흔드는 저력(‘붉은 단심’)

2022-05-24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 “과인의 마음을 흔들어라. 그 마음을 잡아라. 해서 중궁전을 가져라. 진정 중전이 되려고 돌아오신 겁니까? 대체 무슨 일인 겁니까?” KBS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에서 이태(이준)는 궁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돌아온 유정(강한나)에게 그렇게 묻는다. 이태는 좌의정 박계원(장혁)이 유정을 질녀인 양 속여 중전이 되게 하려는 야욕을 읽어내고, 궁 밖으로 유정을 내보내려 했지만 그가 돌아오자 혼란에 빠진다.

그러자 유정은 이태가 알려준 비밀통로를 걸어 나가며 그 축축하고 음습한 곳을 보름마다 지나와 자신을 만났던 이태의 마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태를 연모한다고 고백한다. 즉 유정이 돌아온 건 그 연모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물론 그건 진심이지만 유정이 돌아온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그가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건 죽림원 사람들의 목숨이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유정이 하는 연모의 고백은 이태의 마음을 흔든다. 그래서 그 역시 유정을 연모한다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모가 아무 쓸모가 없다며 그 이유로 유정이 자신이 척결해야할 정적 좌상의 질녀이기 때문이라며 “과인을 흔들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왕과 숙의. 어찌 보면 숙의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게 왕이지만, 이 둘의 관계는 그것이 역전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유정이 ‘연모’를 말하면서도 자신의 사람들이라 표현한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이태는 자신의 연모가 아무 쓸모없다 말하면서 척결해야할 정적 좌상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유정은 적어도 백성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는 반면, 이태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선택을 하겠다는 것. 두 사람 모두 괴로운 위치에 서게 됐지만 유정이 좀 더 주도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밀고 나가는 반면, 이태가 더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는 건 이런 선택의 목적이 달라서가 아닐까.

“제 사람들이 저를 위해 사지로 들어왔습니다. 부모와 일가친척 모두를 잃고 혼자 도망친 건 한 번으로 족합니다. 또 다시 도망쳐서 살아있는 시체로 후회 속에서 살 순 없습니다.” 이미 한 번 도망쳤던 기억을 갖고 있는 유정이 살아도 산 것처럼 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를 살게 해준 건 죽림원 사람들이다. 그러니 유정은 그들을 버리지 못한다. 설령 이태를 연모하고 박계원을 증오한다고 해도.

이처럼 <붉은 단심>이 그려나가는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실질적인 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 유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유정은 이태만이 아니라 자신을 질녀 삼아 권력을 틀어쥐려는 박계원과의 사이에서도 주도권을 쥐려 한다. 조정의 모든 일이 제 뜻대로 흘러가게 만들고 있다고 박계원은 여기지만, 그는 모르는 사실 하나가 있다. 그건 유정이 바로 박계원이 죽였던 유학수의 여식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때 세자빈으로 간택된 이가 불에 타 죽었다고 알려졌지요. 사실이 아닙니다. 그의 여식은 살아있습니다. 살아남아 입궐까지 했습니다... 내가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폐빈으로 죽은 유학수의 여식 유씨입니다.” 유정은 놀랍게도 박계원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 놓는다. 그건 그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 이로써 그를 뒤흔들려는 심산이다.

중전으로 유정을 세우려는 박계원의 야욕은 만일 그가 중전이 되면 돌아올 수도 있는 복수의 칼날이라는 변수를 만나게 됐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박계원은 주도권을 쥐게 된 유정의 어떤 선택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혼돈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과연 유정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태를 연모하고 박계원을 증오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이태가 원치 않고 박계원이 원하는 중전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 입장이다. “전하께선 전하의 길을 가십시오. 저는 제가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속내를 알 수 없어 답답해하는 이태가 유정에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묻자 유정이 하는 답변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가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일까. 박계원을 척결하는 일일까, 이태를 연모하는 것일까, 자기 사람들을 지키는 것일까. 그게 무엇이든 유정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붉은 단심>은 그래서 이태와 박계원의 정치적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지만, 실질적인 주도권은 유정이 쥐고 있는 특이한 구조를 보여준다. 이태 역할의 이준이나 박계원 역할의 장혁보다 유정 역할의 강한나가 더 돋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의 손아귀 안에 이 궁궐에서 벌어질 핏빛 사건들의 향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