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의 여백 vs 박은빈의 디테일, 20대 원톱 여주인공이 사는 법

‘안나’ 수지와 ‘우영우’ 박은빈, 핫한 드라마를 이끄는 비결

2022-07-19     박생강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는 지상파도 아니고 종편도 아니다. 최근 종영한 쿠팡플레이의 <안나>와 신생채널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두 드라마는 판타지와 장르물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지금, 어찌 보면 가장 전형적인 방식의 드라마로 승부를 걸었다. <안나>는 신분을 속인 여주인공의 일대기,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의 변호사 우영우의 법정드라마다.

20대 배우 수지와 박은빈은 이 드라마에서 원톱 주인공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드라마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물론,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다만 두 배우가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연기 방식은 많이 다르다.

과거 영화 <건축학개론>로 수지는 첫사랑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수지가 국민 첫사랑으로 떠오른 이유는 야무지게 연기를 잘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담담하게 그 또래 평범한 여대생의 솔직한 감정을 보여준 면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 잠시 스쳐가는 표정에서 여러 감정을 담아냈다. 평범한 사람들의 설렘, 씁쓸함, 슬픔 같은 것들.

다만 이후 수지가 출연한 드라마에서 <건축학개론>의 장점들이 더 구체화됐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안나>는 수지가 보여줬던 배우로서의 매력이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안나는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거짓 대학생이 됐던 그녀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안나는 그 거짓 때문에 성공했지만, 동시에 거짓 때문에 불안하고 공포에 떤다. 하지만 안나 주변의 사람들은 똑같이 거짓말쟁이이면서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존재이며, 안나의 목을 죄어온다. 이 때문에 <안나>는 심리적 긴장감이 엄청나다.

흥미롭게도 이 과호흡을 불러일으키는 드라마에서 수지는 여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악다구니를 쓰며 독설의 대사를 내뱉는 강한 여주인공은 많이 보았다. 하지만 <안나>에서 수지가 보여준 연기는 결이 다르다. 수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수많은 심리전 속에 휘둘리는 종이인형처럼 흔들린다. 그 안에서 수지는 지나친 설명이나 과한 연기 없이 안나의 심리를 보여주는 솔직한 표정만으로 시청자들이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힘이었다. 동시에 수지의 감정연기는 거짓의 삶을 살아가는 안나에게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어주었다. 인물의 진솔함을 살려낸 것이다. 이처럼 수지는 그녀가 처음 사랑받았던 <건축학개론>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안나>를 통해 자기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반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박은빈은 수지와는 정반대 지점의 연기를 하는 배우다. 아역배우 출신의 이 배우는 굉장히 디테일하고 노련한 배우다. 그녀의 또랑또랑한 딕션만큼이나, 인물의 움직임과 감정 하나하나를 적확하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인상이다. 어떻게 보면 교과서적인 배우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연기가 꽉 찬 느낌이 든다.

<우영우>는 자폐스펙트럼 변호사 우영우를 주인공으로 한 법정드라마다. 법정드라마에게 여러 사건들에 대한 배경지식과 매회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돋보인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 우영우의 캐릭터가 너무 감정적으로 소모됐거나 어설펐다면 드라마는 지금 같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우영우>의 제작진이 들인 공도 대단하지만, 주인공 박은빈의 디테일한 연기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돋보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박은빈은 우영우를 만들어내기 위해, 단순히 자폐스펙트럼 인물의 말투만이 아니라 손짓이나, 표정, 감정선까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천재 변호사 우영우의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여기에 로맨스 코드도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사랑스러운 매력도 시청자에게 어필해야만 한다. 너무 과해도 망치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다른 부분이 뭉개진다. 박은빈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무거운 과제를 훌륭히 소화했다. 그러면서도 배우의 욕심이 보이는 게 아니라, 우영우라는 인물 자체를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냈다.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수지와 박은빈 모두 자신의 역량을 두 드라마에서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또 두 배우 모두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주인공을 선택한 안목도 탁월했다. 수지의 우영우와 박은빈의 안나는 사실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쿠팡플레이, 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