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과 탕웨이, 어디에나 삐딱선은 있다(‘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 모두에게 다르게 읽히는 멜로인 이유

2022-07-23     박생강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스포일러 없는 <헤어질 결심> 리뷰) 150만 명 가까운 관객이 보았지만, 감상이 다들 엇나가는 영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사랑 이야기지만 여전히 관객들 사이에서 엇나간다. 더없이 달콤하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랑 이야기들 속에서 <헤어질 결심>은 지옥 같은 사랑을 건조하고 우아한 방식의 미스터리로 치장한다.

그렇기에 <헤어질 결심>은 여전히 박찬욱 감독 특유의 ‘삐딱선’이 살아 있다. 이 감독의 세계는 늘 ‘삐딱선’으로 흘러간다. 박찬욱의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메시지를 비웃거나 잘게 쪼개거나 상처를 남겨두고 떠난다.

특히 박찬욱 감독의 여주인공들은 이성애자 남성들의 이성적인 세계에 균열을 가하는 ‘삐딱선’의 페르소나들이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피.E 소령(이영애)이 남자 군인들의 세계 속 거짓말들을 간파한 인물이었다면 <복수는 나의 것>에 영미(배두나)는 세계를 바꾸기 위한 투쟁의 길을 걷다 죽는다. 슬프게도 박찬욱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영화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대개 희생양으로 마무리된다. 공고한 이 세계의 희생양으로 사라지면서 이 세계의 어긋난 지점들을 가리키며.

그렇기에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믿은 미도(강혜정)와 복수를 꿈꾼 금자(이영애)는 해피엔딩의 삶을 살 수 없었다. 미도의 사랑은 친아버지 오대수를 통해 그늘졌고, 금자의 복수는 끝났어도 그녀의 삶은 흑백이다. <박쥐>의 태주(김옥빈)는 뱀파이어가 되어 자유를 얻고 성직자 상현(송강호)을 끌어내리는 여주인공지만, 결국 그와 생을 끝낸다. 가장 행복했던 건 <아가씨>의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일지도 모르겠다. 이들 사이에는 어쩌면 이 세계와 상관없는 이들만의 세계가 있었기에 행복했던 것일지도.

한편 <헤어질 결심>의 여주인공 서래(탕웨이) 역시 ‘삐딱선’을 타고 한국에 왔다. 하지만 그녀는 박찬욱 영화의 여주인공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마치 기존의 여주인공들과 헤어질 결심을 한 듯, 서래의 이야기에는 어떤 비참한 인간의 냄새가 좀 더 짙다. 그런데 그 삶을 구질구질하지 않게, 오히려 주인공의 미스터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헤어질 결심>의 능력이다.

더구나 서래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형사 해준(박해일)에 대한 사랑을 발설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과 표정과 행동과 여러 가지 것으로 사랑을 말한다. 해준 역시 서래에 대한 사랑을 티내고 싶어 하지 않지만 수많은 행동과 말투와 탄식, 마음의 결박으로 다 들켜버린다.

<헤어질 결심>은 그래서 모두에게 다르게 읽히는 멜로 영화이기도하다. 사랑에 대해 얼마정도 느끼느냐에 따라 이 영화는 각기 다른 감정의 깊이로 관객에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에 대해 민감한 사람에게 이 영화는 굉장히 긴장감이 넘치는 영화로도 다가온다. 말하지 않은 사랑이란 두 단어 안에 날카로운 감정들이 오고가기 때문이다.

반면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단조로운 플롯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감정에 치우친 인간들이 벌이는 코미디이거나. 맞다, <헤어질 결심>은 코미디로 읽히기도 한다. 가까이에서 나의 사랑은 언제나 멜로지만, 멀리에서 그들의 사랑은 코미디이니까. 마치 번역기로 번역되어진 수많은 말들의 아이러니처럼.

사실 <헤어질 결심> 제목 자체가 연애관계에 대한 아이러니한 어구 아닐까? 그 결심은 헤어지고 싶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짝사랑이 시작되거나, 위험한 사랑이 깊어질 때도 늘 우리는 한다. 그리고 그 결심을 자꾸만 유보하는 것이 사랑의 기쁨과 슬픔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끝은 결국 무너진 마음의 둑으로 밀려드는 밀물이다. 그 밀물의 세계 안에서 인어공주가 거품으로 사라졌듯, 서래는 사랑을 알리고 존재가 사라진다.

그렇기에 감정의 파도가 스크린을 가득 채울 때, 관객들은 이 영화 <헤어질 결심>과 공명한다. 오래전 실패한 사랑으로 인해 맺힌 울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고, 그 울음은 1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사랑이 다르듯 각기 다른 감정의 결이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영화 <헤어질 결심>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