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한산’, 이건 그냥 국뽕이 아니다

‘한산’의 태산 같은 이순신, ‘명량’보다 더 가슴 웅장해지는 이유 ‘한산’의 이순신은 이 시대의 어떤 대중정서를 움직이나

2022-07-27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그래서 우리는] 어차피 이순신이라는 소재를 가져온 작품이니만큼, 가슴이 웅장해지는 짜릿함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은 이미 2014년 개봉되어 무려 1761만 명이 관람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명량>의 후속작이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에 이어 <한산: 용의 출현>을 내놨고 3부작 마지막으로 <노량: 죽음의 바다(내년 개봉 예정)>도 이미 제작을 완료했다.

워낙 <명량>이 거둔 성과가 어마어마한지라 그 부담감도 만만찮을 듯싶은데, <한산>은 어쩐지 전작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우리네 CG 기술이 이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실감나는 해상 전투신은 130분이 언제 순삭됐는지 알 수 없는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또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으로 재연되기도 했던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한산대첩은 1592년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의 주력부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해전으로, 임진왜란이 벌어지고 끝없이 수세에만 몰리던 조선에게 최초의 큰 승리를 안김으로써 전쟁의 양상을 바꿔버린 중요한 전투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스펙터클 전쟁신과 더불어, 이순신과 왜장 와키자카(변요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첩자들의 치열한 정보전도 끝까지 이 대전을 쫄깃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한산>에서 그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건 새롭게 이순신을 해석해 연기해낸 박해일이다. <명량>에서 최민식이 이순신을 민초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이 충정으로 활활 타오르는 인물로 해석해냈다면, <한산>에서 박해일이 해석한 이순신은 한 마디로 ‘태산 같은’ 인물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불리한 전황 속에서 모두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라고 묻고, 왕조차 의주로 도주한 전란의 상황. 그 혼돈 속에서도<한산>의 이순신은 태산처럼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끝없는 패배 속에서도 왜군에게 빼앗긴 부산진을 되찾는 공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순신과 그런 주장이 허황되다며 함께 수세에 집중하자는 경상우수사 원균(손현주)은 그래서 그 면면 자체가 대척점이 있는 인물이다. ‘불굴의 의지’가 느껴지고,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침착한 인물로 <한산>이 이순신을 내세운 데는 한산대첩에서 펼쳐졌던 ‘학익진’ 전법이 바로 그러한 극한의 침착함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적들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학이 날개를 펴듯 일거에 적을 에워싸고 일격을 가하는 전술. 그래서 영화 속에서 마치 격투신처럼 치고 받는 방식으로 그려진 한산대첩 속에서 이순신을 호위하는 무장들 역시 기다리기 힘겨워 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그것이 이순신이 가진 침착함을 더 강화해내기 때문이다. ‘태산 같은’ 이순신은 ‘한산’의 의미인 ‘큰 산’이라는 뜻과도 맞닿아 있고, 그가 한산대첩으로 펼친 학익진이 ‘바다 위에 쌓은 성’이라는 그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여러모로 관통하는 의미가 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침착함은 묘하게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로 현재의 대중들이 갖는 위기감 속에서 요구되는 어떤 리더십으로 읽히는 면이 있다. 그래서 <한산>을 보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순신의 그런 리더십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 속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은 <한산>에 관객들이 그 가슴 웅장해지는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동시에 더 깊게 현실감으로서 몰입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명량>이 당대에 벌어진 가슴 아픈 세월호 참사로 인해 민초들을 향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대중정서가 폭발하며 더욱 관객들을 열광하게 했던 것처럼, 이번 <한산>은 분명 코로나19 같은 작금의 위기 상황 속에서 너무나 차분해 든든하게 느껴지는 그 리더십에 대한 갈망을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한산>에서 등장하는 거북선 역시 극한의 침착함을 갖고 차분히 준비하는 리더십으로 해석한 이순신의 분신처럼 그려진다. 적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바로 그런 평정심을 유지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걸 이 거북선은 보여준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원시원한 작품이고, ‘국뽕’이라는 말이 당연히 나올 법한 작품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을 정도로 답답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영화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영화 ‘한산: 용의 출현’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