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쿠팡플레이의 어설픈 갑질(‘안나’ 사태)
‘안나’ 편집 논란, 쿠팡의 반박을 시청자들은 왜 납득할 수 없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감독의 편집 방향은 당초 쿠팡플레이, 감독, 제작사(콘텐츠맵) 간에 상호 협의된 방향과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서, 그리고 계약에 명시된 우리의 권리에 의거 쿠팡플레이는 원래의 제작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고 그 결과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되었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의 이주영 감독이 내놓은 입장문에 대해 쿠팡플레이 측 반박문에는 그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주영 감독은 애초 8부작으로 편집된 마스터 파일을 전달했지만 쿠팡플레이 측이 ‘아카이빙 용도’라는 핑계로 ‘계약 파기’ 운운하며 가져간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창작자와 협의 없이 다른 연출자와 다른 후반작업 업체를 통해 6부작으로 재편집해 방영했다고 했다. 작품을 쓰고(대본도 이주영 감독이 썼다), 이를 연출, 편집해 내놓은 작품이 쿠팡플레이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재편집되어(2부작이나 줄였다) 방영했다는 것.
여기에 대해 쿠팡플레이가 내놓은 반박문을 보면 현재 OTT 시대의 콘텐츠 제작 시스템이 어떤 부조리한 계약 구조를 갖고 있는가가 엿보인다. 여기에는 <안나>가 방영되는 플랫폼과 투자사로서의 쿠팡플레이가 있고, 작품을 창작한 감독이 있으며 그 사이에서 플랫폼과 창작자 사이를 연계하는 제작사가 존재한다. 반박문 내용으로 보면 쿠팡플레이는 제작사와 계약을 했고 그래서 제작사의 동의를 얻으면 이러한 재편집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된다면 더더욱.
하지만 과연 문제가 없을까. 이 과정에서 어쨌든 창작자가 배제되었고(쿠팡플레이 측은 감독에게 수개월 간 수정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주영 감독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재차 반박했다) 그래서 이주영 감독이 감독과 대본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했지만 이 요구도 거절되었다. 즉 창작자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구 재편집된 작품에 자신의 이름이 억지로 들어가 있는 상황을 겪은 것이다. 제아무리 제작사와 계약을 맺었고 따라서 투자사(쿠팡플레이)나 제작사(콘텐츠맵)가 최종권한을 갖는다고 해도 창작자의 고유권한(동일성 유지권, 성명 표시권 등)을 침해하는 게 상식적일 수는 없다.
이번 안나 사태에서 들여다봐야 할 것은 이른바 OTT 시대를 맞아 이 거대 플랫폼들의 관행처럼 되어 있는 일종의 ‘갑질 계약’이다. 제작사는 어떻게든 이 비즈니스를 성사하기 위해 OTT와 심지어 IP를 모두 넘기는 방식으로까지 계약을 한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들이 그 엄청난 글로벌 영향력을 갖고 있음에도 창작자들이 갈수록 계약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여기서 창작자와 제작사는 살짝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제작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계약의 성사이지만 창작자들은 그 이외에도 온전히 만들어진 자신의 창작물로서 인정받고 평가받는 일이다.
즉 쿠팡플레이 측이 창작자와 (어렵더라도) 끝까지 협의하고 소통한 게 아니라, 제작사와의 계약을 들어 그쪽의 동의를 얻어 편집본을 가져가고 그걸 재편집해서 내놓은 건 제아무리 투자자라고 해도 창작의 고유 권한이라는 선을 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은 아마도 저작권법 안에서 창작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싶다.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서, 그리고 계약에 명시된 우리의 권리에 의거 쿠팡플레이는 원래의 제작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고 그 결과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받는 작품이 제작되었다.” 반박문에 들어간 이 문구를 이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이 사태에 대해 쿠팡플레이가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가 엿보인다.
창작자의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고 해도 계약을 했던 제작사의 동의를 얻었으면 된 것이고 창작자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이와 원만한 소통 없이 제작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한 건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호평을 했으니 괜찮다는 것. 하지만 본래의 감독의 의도대로 완성됐던 8부작을 본 적이 없는 시청자들로서는 쿠팡플레이측 얘기대로 8부작보다 6부작이 더 나은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또 설령 ‘상업적으로’ 더 낫다고 해도 온전한 창작자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작품을 마치 그 창작자의 생각대로 만들어진 것처럼 포장해 내놓은 건 소비자인 시청자를 기만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걸 상품구매에 비유하면 시청자들은 엉뚱한 상품(포장이 잘못되었거나 내용이 바뀐)을 진짜인 것처럼 구매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상품이라면 구매를 번복하고 싶어지는.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쿠팡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