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 신드롬에 박은빈의 지분은 몇 퍼센트나 될까
박은빈의 진가 드러낸 ‘우영우’, 이 착한 드라마가 남긴 것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대중들은 착한 드라마에 갈증을 느꼈던 걸까.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종영에 즈음해 이 드라마가 불러일으킨 신드롬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꿈틀대는 대중들의 욕망이 읽힌다. 그건 비록 잠깐의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선한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는 어떤 정경들을 대중들이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라는 인물은 사실상 현실에서 찾기 힘든 판타지에 가깝다. 실제 현실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일반적인 삶 자체가 막히는 차별적인 사회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갑작스런 폭우로 인한 수재에서도 안타까운 비극을 맞이한 건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판타지라고 해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충분히 가치 있는 드라마였다. 일단 사회가 ‘정상’이라는 범주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애써 지워버리고 없는 존재들인 것처럼 치부하던 장애인을 극의 중심으로 세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우영우는 본인이 장애를 갖고 있지만, 변호사로서 본인 같은 차별적 시선으로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우영우라는 장애인의 사회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가 연대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노부부에서부터 여성, 자폐 장애인, 어린이, 성소수자, 중소기업인, 탈북민 같은 소송의 인물들이나, 아름다운 팽나무가 있지만 개발되어 잘려나갈 위기에 처한 소덕동 같은 소외된 지역까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껴안은 건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물론 우영우가 사회적 약자들 편에서 모든 사건들을 승소로 이끌어내는 슈퍼히어로의 역할을 한 건 아니다. 그리고 판결에서의 승패는 사실 이 드라마의 주관심사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런 소외된 위치에 서 있는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걸 드러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는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관심사였다.
여기서 우영우의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는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는 하나의 리트머스 종이 같은 역할을 해낸다. 우영우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정명석(강기영) 변호사가 위암 수술을 받으러 들어갈 때 노심초사 하는 어머니 앞에서도 “위암 3기인 경우에는 수술 후 5년 생존율이 30, 40%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일종의 유머이기도하지만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세워져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명석 변호사가 수술로 부재한 상황에서 우영우가 장승준(최대훈) 변호사와 함께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로 3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회사를 변호하게 된 상황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 또한 ‘사실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그의 캐릭터가 녹아있다. 의뢰인의 회사인 라온의 이용자수를 “선배님” 운운하며 “전 국민이 이용한다”고 말하는 장승준 변호사의 말을 굳이 “전 국민”은 아니고 전체의 80% 정도라고 수정한다거나, 장승준 변호사가 발음에 따라 전혀 의미가 다른 사법(司法)과 사법(私法)을 혼동해서 발음할 때 이를 수정해주는 우영우의 모습이 그렇다.
이런 정확함과 할 말은 하는 우영우 캐릭터는 그가 맡게 되는 갖가지 소송들 속에서 우리가 편견과 선입견에 의해 놓치고 있는 ‘사태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게 해준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는 자칭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고 말하는 ‘방구뽕(구교환)’이 등장한 내용이다. 학원 갈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놀다 왔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약취 유인’이라는 엄청난 혐의로 체포되는 이 사건에서 우영우가 보는 진짜 사태의 진실은 한창 놀아야할 아이들이 지옥 같은 학원을 전전하는 현실이었다.
결국 이 드라마의 힘은 바로 이 우영우라는 독특한 캐릭터에서 나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실을 바탕으로 작가에 의해 ‘바람직한’ 판타지가 더해진 이 캐릭터는 그래서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현실이면서, 시청자들이 편견을 깨고 그 사태의 진실을 다시금 들여다보게 하는 존재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이 인물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연기다. 진정성과 더불어 판타지적인 매력을 동시에 부여하는 어려움이 박은빈이라는 배우에게 주어졌다.
놀랍게도 박은빈은 사안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유지하면서도,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을 가진 존재로 우영우를 연기해냈다. 사실상 이 드라마의 힘이 박은빈의 연기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런 사실을 방증하는 건 드라마의 성공 후 IP의 확장으로서 나온 웹툰에 나온 시큰둥한 반응들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것처럼 표정이 너무 다양하다”는 식의 반응들에서 드라마에서 박은빈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웹툰에는 박은빈이 없다며 실망하는 반응들 또한.
박은빈이 보여준 연기는 소외된 위치에 선 이들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그들 또한 웃고, 아파하고 행복해하는 똑같은 존재들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심지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건 바로 이 지점이다. 연기는 배우가 가진 매력과 생각, 해석, 태도 등이 그가 가진 표현력과 어우러져 나타나는 결과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의 중심축인 우영우라는 인물의 탄생에는 그 캐릭터의 매력과 더불어 이 배우가 가진 매력이 더해진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작가의 독특한 캐릭터 창출과 박은빈 연기가 ‘우영우 신드롬’에 대해 거의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권력이 없거나, 강하지 못하면 결코 이겨낼 수 없다는 패배주의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현실 속에서 차라리 정의를 위해 악의 편에 서겠다는 식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인물들이 드라마 속에 넘쳐나던 시기다. 그래서 우영우 같은 선한 영향력을 보이는 인물의 신드롬은 이례적인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인물을 이토록 매력적으로 표현해낸 박은빈이 아니었으면 이런 신드롬이 가능했을까 싶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