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김혜수 원맨쇼만 있는 게 아니었다(‘슈룹’)

김혜수와 함께 존재감 커지는 문상민·배인혁·유선호(‘슈룹’)

2022-10-24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 김혜수만의 원맨쇼가 아니었던가. tvN 토일드라마 <슈룹>에 김혜수 말고도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나타났다. 성남대군 역할의 문상민이 대표적이고, 세자 역할의 배인혁, 계성대군 유선호 같은 배우들이 그들이다.

물론 김혜수의 원맨쇼는 절대적이다. 사실상 <슈룹>은 그 제목이 뜻하고 있는 ‘우산’처럼, 김혜수가 연기하는 중전 임화령이 궁궐에서 자식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우산 역할을 하는 이야기다. 즉 임화령 자체가 ‘슈룹’이라는 것.

그래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우산을 쓰고 나선 임화령의 모습은 <슈룹>이라는 드라마의 절박한 서사를 그대로 은유한다. 세자가 혈허궐로 쓰러지자 위기를 직감한 임화령이 폐비 윤씨(서이숙)를 찾아가 우산을 던져버린 채 비를 맞으며 살 방도를 알려 달라 무릎을 꿇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또 계성대군이 몰래 폐전각에서 여장을 하는 걸 목격한 임화령이 그 전각을 불태우고, 대신 계성대군을 데리고 궁 밖으로 나가 여장한 그의 모습을 화폭에 담게 해주는 에피소드에서도 비와 우산이 등장한다. 아들이 그 그림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은 채 궁으로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는 그 길을 함께 우산을 쓰고 돌아올 때, 임화령이 든 우산은 아들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자신이 비를 맞더라도 자식들은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장면이다.

궁궐에서 ‘가장 빨리 걷는’ 중전이라는 임화령의 캐릭터 역시 이 작품이 가진 색깔과 메시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즉 그건 이 작품이 허구이면서 동시에 과장된 코미디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고, 그래서 그 자체로는 웃음을 주지만 그 이면에는 자식들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절박함 또한 담겨 있다. 이 정도니 <슈룹>에서 임화령 역할을 하는 김혜수는 그 역할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중전인 임화령과 대비(김해숙)의 살벌한 대결구도만으로는 어딘가 드라마의 서사는 앙상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 세자의 배동을 선발하기 위해 왕자들이 경쟁하는 일종의 ‘오디션 서사’가 더해져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 왕자들의 서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에 놓인 세자를 돕는 성남대군이 그렇고,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계성대군, 악역 역할을 자처한 의성군(찬희) 그밖에도 유쾌한 활기를 더해주는 무한대군(윤상현)이나 명민함이 돋보이는 보검군(김민기), 심성이 착한 심소군(문성현)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존재감이 두드러진 인물은 어딘가 향후에 임화령을 도와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은 성남대군이다. 세자가 혈허궐로 쓰러졌고 궁중에서 여러 시술을 해보지만 차도가 없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성남대군은 그 병을 고친 경험이 있는 토지선생(권해효)이 역병이 창궐한 움막촌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 곳까지 들어가 처방전을 받아온다. 그 처방으로 세자를 치료하게 한 것. 성남대군은 계성대군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형님인 세자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는 인물이다.

이 에피소드는 <슈룹>이 단지 자식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우산이 되어주는 어미라는 다소 단순한 서사에, 성남대군처럼 때로는 어미의 우산이 되어주기도 하는 자식들이라는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한다. 성남대군이 임화령이나 형제들의 우산이 되어주기도 할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작품이든 또 제아무리 엄청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라고 해도 원맨쇼만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 그건 서사 자체를 너무 단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혜수만이 아닌 문상민 같은 또 다른 배우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대목은 <슈룹>에 새로운 힘을 만들어준다. 과연 이 모자는 서로의 우산이 되어줄 수 있을까. 궁금증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