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증과 가학성 비판에도 우리가 연애예능에 홀린 까닭

K-연애예능은 어떻게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나

2022-10-24     김교석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우리는 연애에 진심이다. 올해 만난 연애예능만 20편이 넘는다. 14주 연속 주간 유료가입 기여자수 1위, 티빙 역대 오리지널 콘텐츠 누적 유료가입 기여자수 1위, 화제성 차트에 일곱 차례나 1위, 트위터가 실시간 트렌드 노출을 기반으로 발표한 3분기 화제의 드라마·예능 콘텐츠 2위 등 화제성 측면에서 올해의 예능이라 할 만한 티빙 <환승연애2>가 마지막 회를 남겨놓은 지금, 그 바통을 이어받고자 10월에만 웨이브 <잠만 자는 사이>, 디즈니플러스 <핑크라이>, JTBC <결혼에 진심>, 11월 쿠팡플레이 예능 <사내연애>, 12월 넷플릭스 <솔로지옥2>도 예고되어 있고 유재석도 새 연애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길고 길었던 관찰예능의 시대 이후 예능 패러다임을 차지했지만 성적표는 솔직히 좋은 편이 아니다. OTT시대 이후 세계무대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솔로지옥>이나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돌싱글즈>, <나는 솔로> 등의 브랜드 이외에 성공적인 지표를 기록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지겹다는 평도 있고, 연애 감정이 딱히 없는 시청자들의 소외가 거론되기도 한다. 어떻게 포장해도 어느 정도의 관음과 무너지는 누군가를 지켜보는 가학성이 가미된 비판적 요소를 깔고 있는 장르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패러다임을 차지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연애예능을 단순히 유행에 편승하려는 의도만은 볼 순 없다. 오늘날 연애예능은 현 시점에서 리얼버라이어티와 관찰예능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온 우리 예능의 발전과 지향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작진 입장에서도 도전해보고 싶은 등반코스다.

2000년대 중반 기존 방송에선 볼 수 없던 욕망과 실제 관계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플레이를 중심으로 리얼버라이어티 시대가 열렸다. 그 덕에 웃음만을 위한 오락으로 한정되었던 예능은 시청자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정서적 콘텐츠로 거듭났다. 제작 기법 또한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기술적 진보를 통해 스튜디오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면서 다큐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흡수했고, 이후 관찰예능이 본격화되면서 리얼리티에 대한 탐구는 일상의 탐닉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이야기가 있는 콘텐츠라는 측면과 대중적 영향력 면에서 드라마의 영역을 넘보는 등 대중문화의 중심 콘텐츠로 떠올랐다. 이런 일련의 변화 과정에서 추구해온 화두가 바로 진정성 있는 리얼리티의 구현과 스토리텔링이란 극화다.

이 흐름 속에서 연애예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출연자의 삶을 기반으로 가져온 캐릭터플레이, 리얼리티, 스토리라는 연애예능의 기본 구성 요소는 정확히 우리네 예능이 추구해온 장르적 탐구 및 노하우와 일치한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그들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정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연애예능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예능이 추구해온 재미의 방향이기도 하다.

기획과 설정 측면에서는 기존 예능보다 훨씬 유리한 측면도 있다. 기존 예능이 지속가능성이나 신선도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인적쇄신의 고민이 있다면, 주로 비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애예능은 새 얼굴의 유입이란 측면에선 비교적 용이한 풀을 갖고 있다. 출연진에 맞춰야 하는 기성 기획에 비해 자유도가 높은데다 연애의 풋풋한 설렘, 재혼, 눈물, 성소수자, 선정성 수위 등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풍부하기에 KBS와 보수적인 종편부터 OTT, 웹예능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유행하니까 너도나도 만들자는 분위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출연자에 의존하는 기존 제작 방식을 넘어서 제작진의 역량이 주체가 되는 무대라는 점도 큰 장점이다.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캐릭터들에게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친다는 점에서 연애예능은 리얼버라이어티와 관찰 예능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지점에 자리한 장르다. 리얼버라어이티가 일상 친분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쇼를 통해서 리얼리티와 진정성을 만들고 관찰예능은 여기서 연예인의 일상에 카메라를 비추며 공감대를 획득했다면, 연애예능은 이혼, 결별한 연인, 결혼 등 실제 삶의 흔적을 기반으로 차원이 다른 진정성과 리얼리티를 선보인다. 방송이 끝나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SNS 등을 통해 출연자의 삶은 계속되고, 실제 커플,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관계에 집중하는 스토리텔링은 리얼버라이어티부터 시작된 캐릭터플레이의 유산이다. 우리네 예능은 리얼버라이어티든, 관찰예능이든 관계맺음 속에서 인물의 매력을 발산했다. 성공한 리얼버라이어티는 캐릭터들의 관계망 속에서 웃음을 만들고, 예능의 스토리텔링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나영석 사단의 콘텐츠에는 늘 함께 무언가를 이루는 ‘가족’이 등장한다. 이 부분이 연애예능의 특징과 이어진다. 수많은 카메라와 고급 편집 인력, 작가들이 조각하는 이야기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스케치이자, 인간관계에 대한 임상 실험이며, 흔들리는 감정선에 따라 고조되는 긴장감은 그 어떤 심리스릴러보다 더 큰 몰입을 자아낸다.

현 시점에서 연애예능은 이러한 예능 극화의 궁극이다. <솔로지옥>이 영미권과 유럽에 이미 유수의 콘텐츠가 있는 연애예능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었던 이유도, 핫바디의 전시와 섹스어필의 쇼가 아닌 감정선을 다룬 드라마에 가까운 새로운 연애예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애예능의 출발은 출연자의 외모나 연애감정일 수 있겠지만 끌고 가는 힘은 연애의 간질간질함만이 아니다. 모든 연애예능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출연자를 응원하는 맛에 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과몰입 현상을 만드는 큰 재미는 드라마에 빠지듯 흥미로운 진짜 이야기(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진짜 감정과 반응을 지켜보는 데서 비단 연애를 넘어서서 대인 관계나 여러 선택의 순간에 놓인 ‘나라면’이라는 특별한 시선을 제공한다. 후회 없는 선택, 타인에 대한 배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소중한 관계를 지킬 수 있는 성장과 성찰이란 배움을 담고 있다.

따라서 재미와 효용이 충분한 만큼 당분간 연애예능을 향한 도전과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예능이 계속해 관심을 갖고 탐구해온 주제들과 제작 노하우, 대중의 관심, 지속가능성에 대한 해결책이 모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겹다거나, 유행이라고 치부하기보다 여기서 무언가 이정표로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사실 오늘날 형태의 연애예능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하트시그널>은 2017년에 나왔다. 유독 올해 폭발적으로 쏟아져서 그렇지 그동안 예능도, 연애예능도 발전해왔다. 다양한 설정의 연애예능이 쏟아지고, 때로는 선정적인 접근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연애의 설렘, 선남선녀 등은 구성 요소일 뿐, 이제 더 이상 K-연애예능의 정수가 아니다.

많은 연애예능 제작진이 본인 프로그램의 장점으로 ‘진정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연애예능의 본질은 연애가 아니라 사람에, 예능이 아니라 드라마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진정성은 현관의 발매트처럼 당연히 깔려 있어야 하는 전제조건일 뿐 더 이상 볼거리가 될 수 없다. 새롭고 기발한 설정도 좋지만 포인트는 연애의 감정 그 다음에 따라오는 관계에 대한 성찰이며, 이를 어떤 서사를 통해 보여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티빙, 채널A, 넷플릭스, MBN,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