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에 강제된 방식의 애도, ‘피해자다움’ 강요의 또 다른 형태

스포츠도 공연도 애도와 함께 할 수 있다

2022-11-02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이태원 참사로 인해 대중문화업계는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지상파 3사, 케이블, 종편은 모두 뉴스 특보 체제를 이어가며 드라마를 포함한 예능 등 방송 프로그램들을 결방했다. 제작발표회도 공연, 콘서트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잠정 연기됐다. 참사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의미가 담긴 저마다의 선택들은 충분히 공감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11월 5일까지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하고, 지자체, 공기업 등이 지침에 따라 일괄적인 행동양식을 권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애도 방식까지 강요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나온 건 공연예술계다. 실제로 싱어송라이터 생각의 여름이 지난 31일 개인 채널을 통해 밝은 의견은 현재의 일괄적인 애도 방식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다.

“이번 주에 하기로 한 두 공연의 기획자들께서 공연을 진행할지, 연기할지에 대하여 정중히 여쭈어 오셨습니다. 고민을 나눈 끝에, 예정대로 진행키로 하였습니다.” 그는 현재 공연업계 종사자들의 고민이 만만찮다는 걸 전제한 후, 이러한 일괄적 애도 방식에 담긴 국가기관의 엇나간 관점을 꼬집었다.

“그나저나, 예나 지금이나 국가기관이 보기에는 예술일이 유흥, 여흥의 동의어인가 봅니다. 관에서 예술관련 행사들(만)을 애도라는 이름으로 일괄적으로 닫는 것을 보고, 주어진 연행을 더더욱 예정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이다. 공연을 단지 흥을 돋우는 그런 재미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거기에는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디 예술이 즐거움과 재미만을 위해 존재할까. 비통한 마음과 아픔, 상처를 위로하고 애도하며 치유하는 것도 예술의 존재 의미가 아닌가.

“공연이 업인 이들에게는 공연하지 않기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하기로 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생각하고 매만져봅니다. 무슨 이야기를 관객에게 할까 한 번 더 생각하여 봅니다. 그것이 제가 선택한 방식입니다.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생각의 여름이 조심스럽게 던진 ‘공연하지 않기 뿐 아니라 공연하기도 애도의 방식일 수 있다’는 말은 애도가 강제된 일괄적인 행동양식이 아니라, 저마다의 선택된 방식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공연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 속에 저마다 애도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피해자라는 ‘피해자다움’의 프레임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흔히 겉으로 드러나는 피해자의 행동을 통해 그가 피해자냐 아니냐를 판단함으로써 그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일으키는 ‘피해자다움’의 프레임이 그것이다. 이 피해자다움의 프레임으로 보면 피해자는 웃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피해자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참사의 피해자는 희생자들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일 수 있다. 국민 모두가 트라우마를 느낄 정도의 불안감과 분노, 아픔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침통하고 아픈 건 사실이지만 그걸 애써 이겨내고 버텨내려고 웃으려 하는 이에게 “너는 왜 웃느냐”, “너는 아픔을 느끼지 않느냐”고 질타의 시선을 보내는 건 어불성설이다. 애도는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걸 버텨내고 이겨내려는 저마다의 방식은 모두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방송도 공연도 모두 멈춰서 있는 국가 애도 기간이지만 지난 1일 인천 문학야구장에서는 2022 KBO리그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렸다. 방송으로 생중계된 이 경기는 연장까지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7대 6으로 키움 히어로즈가 SSG 랜더스를 상대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물론 경기 전 양팀 감독과 선수들은 모두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치어리더와 함께 하는 단체응원은 물론이고 대형 스피커와 축포사용 또 시구행사도 하지 않았다. 스포츠도 추모와 애도를 충분히 하면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공연예술은 왜 안 될까.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를 담아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강제된 방식의 애도를 일괄 지침으로 하달하는 일이 아니라,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예우를 담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을 지는 일이 아닐까. 스포츠도 공연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한 아티스트가 고민 끝에 건넨 정중하지만 준엄한 목소리가 울림을 주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 인스타그램, 대통령실,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