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K팝 어벤져스’ 만들면 대박, ‘저들만의 리그’ 되면 쪽박

SM 거머쥐고 ‘K팝의 디즈니’ 노리는 하이브, 그 빛과 그림자

2023-02-11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하이브가 SM 창업주 이수만 전 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14.8%를 인수함으로써 SM엔터테인먼트(SM)의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과거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 시작하며 SM, YG, JYP 같은 거대 기획사 틈바구니에서 힘겨워하며 유튜브 같은 우회로를 선택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격세지감이다. 이제 하이브는 K팝의 역사를 그려온 SM을 집어삼킨, 명실공히 K팝의 거대 공룡이 됐다.

하이브가 보유한 아티스트들인 BTS, 세븐틴, TXT, 뉴진스, 르세라핌에 SM의 동방신기, 엑소, NCT, 레드벨벳, 에스파까지 더해지게 됐다. 이 그림은 마치 마블의 ‘어벤져스’를 연상케 한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헐크에 스파이더맨, 토르, 캡틴 마블 등등 저마다의 막강한 세계관을 가진 캐릭터들이 하나의 유니버스로 연결되는 그런 일들이 이제 K팝에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은 풍경이다. K팝 역시 마블처럼 저마다의 세계관을 가진 아티스트들로 채워져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인수합병을 통해 K팝의 제국을 그려나가고 있는 하이브의 행보를 보면, 마블은 물론이고 픽사, 루카스필름 심지어 폭스까지 인수합병함으로써 글로벌 캐릭터 콘텐츠 제국을 건설한 디즈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키마우스로 시작한 월트디즈니가 지금의 공룡 콘텐츠 기업이 된 건 끝없는 인수합병을 통한 것이었다. 그건 과연 콘텐츠업계 전체에 긍정적인 흐름을 만들었을까.

빛과 함께 그림자도 분명히 존재한다. 서로 다른 세계관이나 철학을 가진 콘텐츠 회사들이 합병을 통해 더 큰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시너지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러한 결합이 각기 갖고 있는 색깔을 흐리게 만들고 나아가 콘텐츠를 획일적으로 만들어낼 위험성도 적지 않다. K팝도 마찬가지다.

SM이 그간 그려온 K팝의 역사는 음악은 물론이고 댄스, 스타일, 디자인적인 요소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현될 정도로 개성적인 것이었다. 하이브 역시 기존 K팝 흐름에서 또 다른 물꼬를 틔워 BTS 같은 아티스트를 탄생시킨 색깔이 분명하다. 이들이 각각 갖고 있던 건강한 긴장감이 K팝의 다양성을 만들어왔다는 걸 떠올려보면 한 바구니에 담겨지게 된 양자가 자칫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일본 등에 거점을 마련해가며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다양한 레이블 법인들을 운영해온 하이브가 가진 글로벌 네트워크에, K팝의 역사를 만들어오며 비전까지 그려온 SM의 역량이 더해져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 사례로 뉴진스가 거론된다. SM에서 샤이니, 레드벨벳 등의 아이돌을 만들었던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에서 만든 이 걸그룹은 SM과 하이브의 유전자가 결합된 시너지를 결과로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이브가 이러한 인수합병을 통해 SM을 거머쥐고 K팝의 디즈니가 되는 과정 속에서 각 기획사의 아티스트들과 그 팬들은 어딘가 소외된 느낌이다. SM 내부에서 경영진들과 이수만이 대립하고 그 과정에서 카카오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하이브가 나서는 그 일련의 과정은 정작 그 주인공들인 아티스트들과 팬들을 제외하고 마치 누가 경영권을 쥐는가에 대한 저들만의 리그처럼 보이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혼돈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다. K팝 어벤져스는 과연 그 혼돈을 잠재우고 K팝이라는 유니버스를 안정시킬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지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하이브, SM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