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있는 집의 로망? 이건 피비린내 나는 스릴러다(‘마당이 있는 집’)

‘마당이 있는 집’, 김태희와 임지연이 폭로하는 폭력적인 현실

2023-06-20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 답답한 도시의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복작복작 살아가는 서민들이라면 마당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있기 마련일 게다. 하지만 지니TV 오리지널 월화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은 그런 로망을 건드리는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그 집은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의 <가스등>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문주란(김태희)은 이 집에서 들려오는 쿵쿵 대는 환청과 마당 어디선가 느껴지는 악취 때문에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 놓여있다.

척 봐도 부자들만 사는 부촌이고, 리조트를 방불케 하는 정돈된 집과 잘 꾸며진 정원까지 갖춘 집이지만, 문주란의 시선에 담긴 그 집은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넓은 집은 그래서 오히려 문주란이 그곳에 고립된 느낌을 주고, 넓은 마당은 어딘가 시체가 묻혀 있을 것처럼 음산하다. 또 소아과 의사인 남편 박재호(김성오)나 아들 승재(차성제)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불안해 보이는 문주란은 우울증 약 같은 걸 먹지만, 어딘가 그의 불안은 남편의 가스라이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한편 위층에서 무언가를 하는 소리가 아래층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허름한 서민 아파트에 사는 추상은(임지연)은 임신 중에도 남편 김윤범(최재림)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언어폭력은 기본이고, 툭하면 주먹질에 발길질까지 하는 이 폭력 때문에 주민 신고가 이어지지만, 그 때마다 찾아와 걱정하는 경비원 아저씨에게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는 추상은이다. 그는 어딘가 남편을 곧 살해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마당이 있는 집과 허름한 서민 아파트. 사는 공간은 완전히 달라도 문주란과 추상은이 처한 현실은 모두 피비린내가 난다. 문주란은 결국 참지 못하고 마당에서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 땅을 파기 시작하고 거기서 시체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손가락을 발견한다. 남편과 심지어 아들까지 자신을 신경과민이라고 치부했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한 문주란은 충격과 의구심의 해소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드러낸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의사인 박재호와 알고 있는 김윤범은 무언가로 그를 협박하고 있는 중이다. 결국 추상은과 친정집을 함께 가는 길에 돈을 받기로 했던 것처럼 여겨지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 친정집에는 추상은 혼자 들어온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 집을 나서는 길에 추상은은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그 소식에 전혀 놀라지 않는 얼굴이다. 누가 봐도 전날 밤 추상은이 남편을 죽인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남편들과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두 여자지만, 이들은 모두 폭력적인 현실에 둘러 싸여 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문주란이 마당에서 발견한 시체는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그것 역시 그의 환시일까. 문주란이 본 것은 진짜일 가능성이 높지만 남편과 아들이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하는 가스라이팅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추상은은 결국 남편이 사망함으로써 그걸 이루게 됐지만, 아마도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 이를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폭력적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두 여자들은 또한 그렇게 남편들을 매개로 엮어질 것이고 그건 새로운 사건의 국면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마당이 있는 집>은 그런 로망을 자극하는 공간이 막연히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의 조건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깨버린다. 대신 어느 공간이든 존재하는 폭력 앞에 놓인 두 여성들의 실상을 폭로한다. 이들은 과연 저 폭력 앞에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줄까. 아니면 그 안에서도 서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될까. 전원생활의 로망? <마당이 있는 집>은 아름다운 마당이 있는 집 그 아래 묻힌 시체가 썩은 내를 풍기는 게 우리네 현실이라 말하는 스릴러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