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가 험난한 이 바닥에서 현재진행형 톱스타로 살아남은 비결

김완선과 엄정화의 각기 다른 매력② (엄정화 편)

2023-06-22     박생강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1993년 엄정화는 1집 앨범과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가수와 배우 양쪽으로 한 해에 데뷔했다. 정작 1집 앨범과 영화 모두 흥행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엄정화만은 살아남는다. 신해철이 만들어준 1집의 수록곡이자 영화 OST의 수록곡인 <눈동자>가 알려지면서 엄정화란 존재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언뜻 마돈나의 1992년 앨범 <Erotica> 사운드가 떠오르는 <눈동자>는 사실 한국 대중의 입맛에 맞는 곡은 아니었다. 미디엄 템포에 에로틱한 분위기의 이 노래는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엄정화의 <눈동자> 무대를 TV에서 본 시청자들은 이 노래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사랑은 은은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순간에도 느껴지는 것> 바로 노래의 낯섦과는 달리 엄정화가 눈으로 전달하는 야릇한 분위기에 금방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엄정화에게 ‘눈’은 그녀가 성공하는 데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타고난 댄서나 보컬리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무대에서 눈으로 특유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탁월하다. 2집에서 빅히트한 <하늘만 허락한 사랑> 같은 발라드에서조차 그녀는 눈으로 애절한 사연을 들려주는 것 같은 무대를 연출한다. 무대에서 김완선의 눈이 레이저를 쏘는 눈빛이라면, 엄정화는 리모콘으로 채널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다양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동시에 엄정화가 가수만이 아닌 배우로도 크게 성공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슬픔과 기쁨 등 여러 감정을 고스란히 눈빛에 담을 줄 아는 배우여서 대중들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곧바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눈으로 보는 무대에 공을 들인 첫 번째 스타이기도 했다. 김완선의 무대가 명인 댄서가 보여준 ‘충격’이었고, 훗날 이정현의 <와>가 동서양의 판타지가 무대로 올라온 ‘충격’이라면 엄정화의 시각적 무대효과는 이 둘과는 조금 다르다.

1990년대 엄정화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드라마적 분위기를 댄스곡의 무대에서 연출했다. 3분여의 무대에서 그녀는 근육질의 남성 댄서들과 함께 드라마의 여주인공 같은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이유로 90년대 전성기의 엄정화 노래는 뭔가 극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를 갖춰야만 했다. <배반의 장미>나 <포이즌> 같은 주영훈표 댄스곡이 대부분 그러하다. 사랑, 배신, 불륜, 유혹, 이별, 분노 등의 드라마틱한 감정선이 90년대 특유의 강렬한 나이트클럽 스타일 댄스음악 안에서 요란하게 흔들린다.

비슷한 시기 박진영이 엄정화에게 선물한 <초대>는 엄정화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노래로 손꼽힌다.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그대가 내 품에 들어오게/이 마음과 이 미소와 이 눈빛과 이 손길로/오늘밤 그대를 유혹할래>. 엄정화는 <초대>의 노랫말처럼 90년대 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남성팬들에게 그녀는 친숙한 섹시스타였고, 여성팬들에게 그녀의 노래는 에로틱과 로맨스의 감정이 담긴 한 편의 소설이었고, 게이팬들에게 무대 위의 엄정화는 내면의 드라마 퀸을 깨어나게 하는 존재였다.

한편 엄정화는 트렌드를 읽어가는 눈도 빼어났다. 아마도 그 첫 번째는 세기말이던 1999년에 사이버틱한 콘셉트의 <몰라>를 들고 나왔을 때였다. <몰라/알 수가 없어.> 물방울 귀마개를 쓰고 고글을 쓰고 무대에 올라온 엄정화를 보고 느낀 대중들의 감정은 그랬다. 하지만 어느새 <몰라>는 엄정화를 대표하는 독특한 히트곡이 됐으며, 이모티콘 ‘d-.-b’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이후 엄정화는 앞선 트렌드를 읽는 감각으로 8집과 9집의 일렉트로닉 앨범으로 음악적인 평가를 받았고 2008년에는 빅뱅과의 만남을 통해 트렌디하면서도 대중적인 <D.I.S.C.O>라는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앨범 일명 <구운몽>에는 각기 다른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했지만 엄정화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세련된 곡들을 모아놓았다.

그런데 2023년 데뷔 이후 엄정화는 30년이 지났지만 또 한 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과 tvN <댄스가스 유랑단>을 통해서다. 두 프로그램을 통해 엄정화는 밝고 사랑스럽고 친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중들이 늘 알고 있었지만 화려한 무대에 감춰져 잊고 있었던 바로 그 모습이 이번에는 엄정화가 다시 사랑받게 된 키워드다. 생각해 보면 그녀의 이런 밝고 사랑스러운 에너지는 30년간 그녀가 험난하고 변화무쌍한 대중문화의 세계에서 현재까지 추억이 아닌 현재진행형 톱스타로 살아남은 진짜 이유일 수도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SBS, JTBC,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