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그대’·‘설희’ 표절공방, 누가 더 억울한가
2014-01-29 이만수
‘별그대’ 표절논란, 왜 법정까지 가게 됐나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가 자신의 작품인 <설희>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강경옥 작가는 결국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는 길을 택했다. 그녀는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이 승소를 자신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작가 생활을 한 사회적 책임’ 때문이라고 했다. 블로그에 밝힌 소회를 보면 그녀는 이미 현재의 법적 상황에서 이런 표절 관련 법정 공방에서 승소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법정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데는 몇 가지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첫 번째는 지금 현재 <별그대>가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자신의 작품 <설희>가 여전히 연재중인 작품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사실 관계 목표가 목적이었다. 내 작품이 먼저 저 설정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하기도 했다.” 강경옥 작가의 이 말은 <설희>가 먼저 이런 설정의 스토리로 만들어졌다는 걸 밝히지 않으면 거꾸로 <별그대>를 표절했다고 주장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작품의 표절 논란에 있어서 누가 먼저 그걸 세상에 내놓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즉 이대로 <별그대>가 먼저 방영되고 나면 <설희>는 표절 혹은 아류작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작품 속에 살짝 언급은 되어 있지만 그것이 구상된 것일 뿐 아직까지 작품으로 완전히 나온 것이 아닌 <설희>의 강경옥 작가로서는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먼저 그런 설정을 만들었고 그러니 오리지날리티가 있다는 것을.
또한 그녀는 굳이 법정으로 이 문제를 가져가게 되는 또 다른 이유로 저작권법이라는 것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유리’한 업계의 현실을 들었다. ‘업계의 사회적 자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저작권법의 기준이 모호해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이 패소한다고 하더라도) 일종의 사회적 환기와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녀가 블로그에 게재한 장문의 글에서 비유적으로 든 ‘무언가를 유괴 당한 꿈’에 대한 이야기는 이 쉽지 않은 싸움을 왜 포기할 수 없는 지가 잘 드러나 있다. 꿈에서 무언가를 유괴 당했는데 쉽게 찾을 수도 없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다는 것. 그녀는 표절이라는 것이 ‘세월을 두고 정신적 피해가 남는 일’인 유괴와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다. 이 ‘계획되고 지능적인 범죄’를 그냥 포기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별그대>의 박지은 작가와 제작사인 HB엔터테인먼트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먼저 박지은 작가가 이 아이템을 생각해낸 것은 과거 그녀가 예능 작가로 활동하던 2002년과 2003년 사이 SBS <깜짝 스토리랜드>라는 프로그램에서 ‘역사 속으로’라는 코너를 집필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당시 1주일에 한 편씩 이 코너를 하면서 광해군일기 속에서 1609년의 이 사건을 만났다는 것. 하지만 당시 이 아이템의 프로그램화는 ‘CG와 방대한 촬영스케일’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고 대신 <미스터리 파일 – UFO는 있는가>라는 방송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렇게 갖게 된 아이디어가 이번 작품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지은 작가는 ‘작가로서의 양심과 모든 것을 걸고 강 작가님의 작품을 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경옥 작가는 비슷한 설정이나 스토리의 콘텐츠들을 미리 체크하지 않은 것도 작가로서의 직무유기라고 말한다. 자신이 주로 SF계열의 작품을 해오면서 비슷한 내용이 있는가에 대해 늘 주의를 기울였던 반면, 박지은 작가는 ‘현실관계 얘기를 해오다 다른 장르로’ 넘어오면서 겹치는 부분에 대한 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경옥 작가가 ‘40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다른 종류의 초능력을 가지고 전생에 도와준 인간을 현세에 어린 시절에 구해주고 커서 연예인으로 나타나 찾아가 사랑을 하는’ 이야기의 골격이 같은 걸 들어 표절을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HB엔터테인먼트 측은 조목조목 그것이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즉 광해군 일기의 내용을 똑같이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고, 거기서 뻗어나간 이야기의 상상력은 다르다는 것.
HB엔터테인먼트 측은 <설희>와 <별그대>의 서로 다른 기획의도, 다른 인물 설정(<별그대>가 슈퍼맨에 영감 받은 캐릭터라면 <설희>는 뱀파이어에 영감을 받은 설정이라는), 확연히 다른 스토리 구성(<설희>의 인물은 미스터리한 접근을 쓰는 반면 <별그대>는 처음부터 외계인임을 밝히고 들어가는), 톱스타라는 캐릭터의 비중(<설희>가 부수적인 캐릭터로 설정한 반면, <별그대>는 극에 긴장감을 주는 주요 캐릭터라는), 주제의식 등을 들어 확연히 다른 작품임일 주장하고 있다.
즉 한 마디로 말해 ‘광해군 일기’의 기록을 모두 모티브로 삼았을 뿐, 다른 방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 다른 작품이라는 것. “‘외계인’, ‘톱스타’, ‘불로불사’란 단어만을 들으면 두 작품이 유사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그런 기준대로라면 “‘악독한 계모’, ‘죽음 직전에 부활’, ‘친어머니의 죽음’을 근거로 ‘백설공주’가 ‘심청전’을 표절했다고 봐야한다”는 주장이다.
강경옥 작가와 <별그대>측의 가장 큰 입장 차는 강경옥 작가의 <설희>라는 작품이 가진 소재들과 스토리 구성이 ‘독립적 스토리’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강 작가는 이것이 ‘독립된 스토리’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별그대>측은 소재들만으로는 ‘독립된 스토리’라 주장될 수 없고 따라서 소재가 비슷하더라도 다른 스토리 구성이나 캐릭터 등으로 전개된 이야기는 다른 스토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논란은 사실 그 진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설희>라는 작품에 들어가 있는 이야기 설정들이 여러 다른 작품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것으로 고유성이 있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강 작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설정들이 한꺼번에 비슷하게 들어있다는 것도 의구심을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적인 판단 역시 그것이 진실을 밝혀주는 수단이 되기에는 저작권법의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부분은 어떨까. 이것 역시 첨예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번 논란이 강경옥 작가의 지지층들과 <별그대>의 팬층이 부딪치는 양상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