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제작진이 한국의 올드한 정서로 전세계 시청자를 열광시킨 비결

디즈니플러스의 구세주가 된 ‘무빙’의 가장 중요한 의의

2023-09-26     최영균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 열풍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무빙>은 지난 8월초 7회가 한꺼번에 공개된 후 매주 2회씩 선보이다 20일 18, 19, 20회 마지막 3부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의 초능력자들 이야기인 <무빙>은 비교적 잘 구현된 초능력 액션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캐릭터들의 서사가 정서적으로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으로 이어졌다.

희수 역의 신예 고윤정은 스타로 떠오르고 이정하, 김도훈 등 함께 한 고등학생 역할 출연진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류승범, 곽선영 등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출연진 대부분이 더욱 완소 배우가 되는 계기가 됐다.

디즈니플러스는 가입자 수가 크게 늘어나고 한국 런칭 후 비로소 대표작을 갖게 됐다. 시청자들은 매주 2회씩만 공개되는 방식에 갈증을 느끼고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무빙 앓이’를 토로하는 등 올해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디즈니플러스의 공식 입장은 아직 없지만 시청자들에게서는 속편 제작에 대한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글로벌 반응에 있어서는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만큼 자리 잡고 있지 못하고 미국에서는 훌루를 통해 방송되는 등 플랫폼이 분산돼 있어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 방송돼 전 세계를 휩쓴 <오징어게임> 뒤를 이을 한국 대표 OTT 드라마로 평가하는 외신의 평가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무빙>은 히어로물이지만 영웅담이 아니다. 초능력자들은 세상을 영웅스럽게 구하기보다 그 능력으로 인해 일반인들과 괴리되는 것을 두려워해 조심하고, 능력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심지어 안기부에서 일을 하게 되는 초능력자들조차도 국가나 국민을 구한다는 느낌보다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 나가기 위해서거나,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결국 생존을 위해 초능력을 활용한다. 마지막회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김봉석(이정하)의 능력이 불특정 타인들을 구하는데 사용되면서 속편이 있다면 또 다른 세계관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했다.

이러한 초능력자들의 특성은 남북 분단도 넘어선다. 임무에 따라 남한의 초능력자들을 극렬히 공격하던 북의 초능력자들도 마지막에는 같은 편만 아니라 적까지도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등 나의 생존이 곧 가족의 존속이며 이를 위해 고통 속에 싸우는 서로의 같은 처지에 공감한 모습을 보여준다.

휴머니즘 관점의 초능력자들 이야기이다 보니 히어로물인데 판타지 멜로 청춘성장 첩보 스릴러 느와르 등 다양한 장르를 혼재해 접붙여 놓아도 이질감이 없다. 초능력자들의 이야기이지만 일반인들의 삶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 스토리라인이 기반이기에, 삶을 다루는 예술인 영화나 드라마의 어떤 장르를 결합시켜도 잘 붙는 것이다.

초능력자들의 생존기는 이들을 멀리 떨어진 신적 존재로 느끼게 하지 않고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일반인의 삶과 유사하기에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초능력자들의 성장을 기대하게 되고, 연애에 가슴이 뛰고, 위기에 처했을 때 응원하게 만들면서 <무빙>에 깊게 빠져들게 된다.

웹툰 원작자이자 드라마 작가인 강풀은 이 지점에서 ‘올드’한 감성들을 꺼내 들었다. 목숨 걸고 서로를 지켜내는 부모 자식 간의 천륜, 지고지순하고 희생하는 남녀 간의 사랑, 동료와 그의 가족을 챙기는 의리 등이 <무빙>을 진하게 물들였다.

이런 감성들은 한국적이고 전통적이라 할 수 있는데, 언젠가부터는 ‘오글거린다’거나, ‘쿨하지 못하다’는 대접을 받으면서 구시대 유물처럼 기피돼왔다. 그러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전면적으로 내세워 다뤄지지 않고 양념처럼 축소돼 사용된 지 꽤 됐다.

오래됐지만 깊고 진한 이 감성들을 강풀 작가는 씩씩하게 소환해 대중들을 깊고 진하게 웃고 울리며 <무빙>을 최고의 히트작으로 만들었다. 구시대적이라 폄하되는 기제들이 실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감추고 있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열광시킨 레트로의 성공적 사례는 또 있었다. 신파가 글로벌 신드롬에 한몫 단단히 한 <오징어게임>이 그러했다.

<무빙>은 히어로들에 대한 생활밀착형 접근으로 감정 이입과 몰입감을 높였다. 개인 서사의 꼼꼼한 전개로 느린듯하면서도, 템포 빠른 사건 진행으로 순삭인 완급조절도 점수를 받을 만했다, 매력적인 캐릭터, 초능력 액션신의 현실감있는 묘사, 묘하게 특이하면서도 복고적으로 친근한 음악 등 많은 장점을 갖춘 작품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족, 연인, 친구, 동료들에 대해 순수하고 희생하는 사랑이라는 한국의 오래된 정서들이 쿨하기만 한 줄 알았던 현재 사람들의 마음도 뒤흔들 수 있는 강력한 초능력이라는 것을, 보편적 가치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계기라는 점이야말로 <무빙>의 가장 중요한 의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디즈니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