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능판 휩쓴, 리얼 인간군상이 펼치는 대환장 콘텐츠(‘나는 솔로’)

차원 다른 멘탈 보유 출연자들, 현존하는 관찰예능의 정점을 찍다

2023-10-10     김교석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넷플릭스 <데블스플랜>이 지금 시점에 공개된 것은 잘못된 ‘계획’이 아닐까. 게임 서바이벌 예능이 흥하기 위해서는 신선함과 설계의 절묘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특출난, 특별한 출연자가 두각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 인물들이 인도하는 감정이입이 붐업의 단초다. 이를 위해 게임 예능은 세계관과 상금이라는 설정과 동기부여를 통해 자극을 인위적으로 마련한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과몰입의 동기는 적나라함을 드러내도록 설계한 공간에 내던져진 캐릭터들이 펼치는 ‘리얼’한 모습에서 나온다. 문제는 대규모 자본도 세트의 규모로도 상대할 수 없는 리얼한 인간군상이 펼치는 대환장 콘텐츠가 때마침 대한민국 예능판을 휩쓸고 있다는 점이다.

SBS 플러스 <나는 솔로> 16기 돌싱 특집은 평범하게 말하면 레전드고, 조금 더 의미를 구체화하면 리얼리티쇼의 새로운 지평이다. 편집 방법, 스토리텔링 기법, 기획의 접근법 등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실제 삶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를 프로그램 안으로 가져온 흔하디흔한 일반인 예능이다. <나는 솔로> 자체적으로 봐도 벌써 16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사랑의 짝대기의 향방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인간관계에 대한 반면교사이자 거울치료이며 교훈으로 나아갔다. 나로 인해, 타인으로 인해, 상황으로 인해 상처를 내고 상처가 나는 관계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면서 좋은 사람의 조건에 대해 스스로에게 반문을 하게 만든 뜻밖의 결과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떻게든 긴장을 높이고 기를 앗아가는 영숙을 비롯해, 한 기수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한, 쉽게 말해 다양한 성향의 ‘빌런과’ 출연자들과 그들에 휘둘리지 않는 출연진의 조합은 현재 기술로는 AI도 짤 수가 없을 거라 확신한다. 연애예능이라면서 사실상 연애감정보다는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로얄럼블처럼 피아가 없는 싸움으로 이어진다. 수많은 데이터와 노하우를 쌓은 막장드라마도, K-예능의 특화된 장르이기도 한 연예예능 중 그 누구도 근접한 이야기를 보여준 적 없는 그야말로 적나라하고 기상천회하며 자극적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누가 쥐어주거나 설정을 가미한 악마의 편집이 아닌 ‘현실’의 반영이란 데 있다. 이는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준비한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특정 상황에서 극적으로 바뀌는 사람들, 비이성적인 모습들을 보면 욕부터 나오지만 들끓은 도파민이 가라앉고 나면, 일말 이해도 되고 또 거기서 나의 얼굴이나 누군가의 얼굴이 비쳐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보게 되고, 자신의 현실에선 어쩔 수 없는 불편한 장면을 마주하면서 욕하면서 반성하는 과정을 즐기는 길티플레져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올해 등장한 예능 콘텐츠 중 가장 큰 사회적 도파민을 남기고 마무리된 직후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다. 방송은 끝났지만 출연자들의 활동으로 인해 이야기는 계속 진행된다. 당장 최종회보다 10월 4일 밤 마지막 방송 후 5일 새벽에 곧이어 제작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한 <나는 솔로> 16기 라이브 방송이 더 큰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최종회의 결과를 뒤집는 지금 시점의 스코어를 알려주고, 16기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영숙은 마치 시상식의 대상 수상자처럼 마지막에 나타나 감사의 소감을 남기며 분위기를 가져갔다.

이 라이브에서 확신한 것은, 출연진은 자신들이 만든 화제성이 특정한 ‘밈’과 같이 부정적인 면이 있음을 알면서도 SNS 라이브를 비롯해 관련한 활동이나 소통 등 방송의 ‘여파’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SNS의 팔로워 수가 급증하고, 주변 반응을 소개하고, 각자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소통도 하고 사적인 만남이나 친분을 공개하기도 한다. 상철은 <나는 솔로>의 스핀오프 프로그램 <나는 솔로, 그 후 사랑은 계속된다>에 출연할 예정이기도 하다.

물론,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셀럽화나 덱스 같이 방송가에 자리잡는 경우도 있고, <가짜사나이> 시절부터 각자 채널을 가진 출연자들이나 관련인들이 리뷰를 통해 방송 안팎으로 시점을 다변화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익숙해진 문화다. 그런데 <나는 솔로> 16기 멤버들은 대중의 도파민 분출이 <환승연애>나 <솔로지옥> 때와 다른 연유였음에도 방송 진행중에도 각자의 인스타그램이나 방송 제작진의 울타리를 넘어선 이외의 사가들을 펼친다는 데서 한 차원이 다른 멘탈을 보여준다.

방송 중 갈등을 SNS로 옮겨오기도 하고 ‘상철처럼 집요한 제작진’이라거나 ‘큰 거 온다’는 등 관심을 즐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모습과 그릇이 남다르다. 카메라에 포착되고 편집으로 구성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출연자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전국민적인 가십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보이는 모습은 흔히 지금까지 말해온 일반인 리스크라든지, 제작진의 출연진 보호 관례, 리얼리티의 한계에 관한 기준선을 한 발 더 물리게 만들었다. 이번 16기는 현존하는 관찰예능의, 리얼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이유다.

흔히들 현실이 더 드라마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번 16기는 그 표현을 넘어선다. 방송이 현실을 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중 일부가 방송이 된 것뿐이다. 방송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출연자들이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특정 세계관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군상에 집중하는 게임서바이벌 예능이나, 연애의 감정과 남녀관계를 내세우는 연애예능의 입장에선 이 16기 출연자들은 일종의 생태계 교란종이며, 어쨌든 장르의 새로운 속성을 열어젖힌 개척자라 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플러스, 촌장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