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난 대사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차라리 서사를 더 챙겨라(‘마이 데몬’)

‘마이 데몬’, 어설픈 코믹보다 설레는 커플 서사로 승부 봐야

2023-12-02     박생강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금토드라마 <마이 데몬>에는 사랑을 모르는 치명적인 악마 정구원(송강)이 등장한다. 200년간 살아온 데몬이란 설정은 생각보다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다. <미녀와 야수>부터 흡혈귀며 냉동인간이며 늑대인간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괴물 남성과 인간 여성의 로맨스 서사는 쭉 이어져 왔다.

하지만 <마이 데몬>의 인상적인 캐릭터는 오히려 데몬 정구원보다 도도희(김유정)다. 재벌가의 직계가 아닌 소공녀 여주인공의 삶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과연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이 여주인공이 어떻게 살아남을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또 하나 <마이 데몬>의 매력은 정구원은 사랑을 모르고 도도희는 사랑을 피하는 인물이라는 데 있다. <마이 데몬>은 정구원이 도도희 때문에 데몬의 능력을 잃으면서 로맨스의 싹을 틔운다. 도도희가 데몬의 능력을 앗아갔고, 정구원은 도도희를 통해서만 데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적들에 둘러싸인 도도희는 데몬 정구원의 힘을 빌려 모든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처럼 <마이 데몬>은 설정 자체는 흥미롭다. 하지만 생각보다 초반의 이야기가 썩 흥미로운 건 아니었다. 소란스럽고 수많은 인물들이 날뛰는데 이상하게 지루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도도희의 측근인 미래그룹과 정구원이 대표로 있는 선월재단 멤버들의 서사가 너무 익숙해서일 것이다.

대기업 창업주 주천숙(김해숙)의 자녀들인 노 씨 남매들이 특히 그렇다. 이들이 보여주는 악랄함과 푼수 같은 대사들이 그다지 참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도도희의 최측근인 신비서(서정연)가 내뱉는 냉철하지만 코믹한 대사들도 마찬가지다. 김은숙 작가의 로맨틱코미디 속 조연들의 맛깔난 대사를 맹물에 헹궈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비슷한데 오래되고 밍밍하다.

선월재단의 진가영(조혜주)과 박복규(허정도)가 정구원과 함께 그려내는 판타지 서사도 따분하다. 특히 박복규가 정구원과 계약을 맺는 전생과 전생의 과거 서사는 재미도 없는데 굳이 이렇게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사실 미래그룹과 선월재단은 <마이 데몬>에서 생각보다 비중이 높다. 기업 암투 서사와 판타지 서사의 두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깔끔하게 배경설명을 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 큰 두 축의 재미가 생각보다 없다보니 드라마의 텐션이 떨어지고 결국 정구원과 도도희 두 주인공들의 서사가 묻혀버린 감이 있다.

결국 <마이 데몬>의 초반 승부수는 심장 없는 데몬과 얼음 같은 소공녀가 서로를 밀어내지만 로맨스에 이끌리는 그 감정선을 잘 잡아내는 데 있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코미디 장면들이 많아서 두 사람의 감정선이 드러나는 순간은 몇몇 컷으로 끝나 버렸다.

하지만 <마이 데몬>은 3회 후반에 주천숙의 갑작스런 죽음과 유언장을 통해 도도희가 미래그룹의 상속녀가 되면서 탄력을 받는다. 주천숙의 유언에 따라 도도희는 결혼을 해야 하고, 그녀는 데몬 정구원과 계약결혼을 선언한다. 여기에 주천숙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도 있다. 이제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건의 키를 쥐고 움직이는 구도다.

3회 후반에 이르러서야 <마이 데몬>은 본 궤도에 올라온 인상이다. 초반에 힘을 뺐지만 아직 기대할 부분은 남아 있다. 도도희와 정구원이 위기를 극복하는 서사를 좀 더 긴박감 있으면서도 설레게 풀어간다면 익숙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드라마가 될 것 같다. 단 지금처럼 낡은 코미디의 악령이 드라마에 짙게 깔린다면 그 미래는 암울할 수도 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