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의 결이 다른 미친 연기만으로도(‘살인자o난감’)
‘살인자o난감’, 최우식의 일상, 손석구의 딜레마, 이희준의 폭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어느 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이탕(최우식)은 그가 죽인 인물이 죽어 마땅한 살인자였다는 걸 알게 된다.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장난감(손석구)는 그 사건의 끝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연관된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정의로운 형사가 되고 싶었던 송촌(이희준)은 그 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사적 정의에 나서고 그건 그를 희대의 살인마로 폭주하게 만든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o난감>은 예사롭지 않은 세 인물의 아이러니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A Killer Paradox’라는 영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서사는 역설적이다. 의도와 다르게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로 그 시청자들의 예상을 계속 뒤집는 전개가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다. 저마다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욕망과 분노가 우연과 필연으로 겹쳐져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그 흥미진진한 ‘난감함’에 빠져보다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위태로우며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를 조망하게 되는 울림이 만만찮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매력이 예측불허의 변화해가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인 만큼, 그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꺼내놓고 납득되게 변화해가는 인물을 표현해내는 연기자들의 몫은 절대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탕, 장난감, 송촌의 드라마틱한 변화 과정은 이들을 연기한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의 미친 연기력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최우식이 표현한 이탕은 일상적 인물이 어떻게 살인자가 되어가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우식 특유의 힘을 쪽 뺀 일상연기는 평범해 보이는 인물 내면에 학창시절부터 학교폭력을 당해오며 쌓인 분노의 감정들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게 되는 진상 손님으로부터 촉발되는 과정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순간적인 충동에 살인을 저지른 후 벌어진 일 앞에서 벌벌 떠는 이탕의 모습에서부터, 자신이 죽인 자들이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려움과 합리화 사이를 오가는 모습까지 최우식이어서 더 납득되는 연기를 보여줬다.
장난감 형사 역할의 손석구는 극악한 범죄자(범죄도시2)에서부터 범죄자를 추적하는 형사(카지노)를 오가는 연기의 스펙트럼을 이미 소화했던 배우다. 그래서인지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하는 손석구의 집념을 따라가면 <살인자o난감>은 형사물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난감 형사는 끝내 추적하던 살인자 송촌을 통해 마주하게 된 진실 앞에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딜레마에 빠진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형사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애써 왔지만 범죄자 앞에서 터져나온 분노는 사적 처벌의 욕망을 느끼며 이로써 송촌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될 위기에 놓이기 때문이다. 손석구는 이 미칠 것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특유의 양면적 이미지를 오가며 끌어내는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드라마의 후반부의 에너지를 만들어낸 송촌이라는 전직 형사지만 희대의 살인마가 된 인물을 연기한 이희준은 이 작품에 마치 느와르 같은 장르적 묘미를 더해 넣는다. 정의를 믿었던 형사였지만 부정한 선배의 모습 앞에 무너져 내리고 결국 사적 정의라는 범죄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버린 이 인물을 이희준은 목소리부터 표정 하나까지 소름끼치는 연기로 그려냈다. 살벌하지만 어딘가 느껴지는 쓸쓸함 같은 페이소스까지.
<살인자o난감>은 사실상 이 세 인물이 서로 꼬여가는 변주를 담은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우식, 손석구, 이희준의 미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이 전해지는 건 그래서다. 평범한 인물이 살인자가 되기도 하는 그 극적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그 자체가 사실상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