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양한 장르가 가능한 걸그룹 오디션이라니(‘걸온파’)
록, 팝, 힙합, 발라드까지... 쇼케이스 방불케한 ‘걸온파’ 결승 무대
[엔터미디어=정덕현] JTBC <걸스 온 파이어> 톱10이 벌이는 결승 1차전은 프로듀서 영케이, 선우정아,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 윤종신 네 사람이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신곡 미션’으로 치러졌다. 그런데 역시 프로듀서의 색깔에 따라 음악의 장르적 차이까지 분명하다는 점을 두고 보면 열 명의 참가자가 각각 두 곡씩 소화해내야 하는 결승 무대가 결코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네 명의 프로듀서가 가져온 곡들은 장르적으로만 봐도 하이틴 록, 어쿠스틱 팝, 힙합 R&B 그리고 발라드에 이르는 다양성이 묻어난다. 영케이가 프로듀싱한 ‘Fire’는 개코가 말했던 것처럼 불꽃 터지는 장면에서 대학축제 마지막 무대 같은 느낌을 주는 발랄한 하이틴 록이었고, 선우정아의 ‘Trend’는 역시 선우정아표라고 할 수 있는 그루브한 음색과 유연한 리듬이 돋보이는 어쿠스틱팝 장르였다.
또 다이나믹 듀오의 ‘Done’은 R&B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힙합 장르를 선보였고, 윤종신의 ‘오디션’은 가사 한 줄 한 줄이 심금을 건드리는 발라드였다. 기본적으로 이처럼 다양한 장르들을 소화한다는 건, 저마다의 색깔과 개성이 다르긴 하지만 <걸스 온 파이어>의 참가자들이 얼마나 실력적으로 준비되어 있는 재원들인가를 알게 해준다. 결승 1차전 무대가 특히 빛날 수 있었던 건, 걸그룹 오디션에서 이토록 다양한 장르들이 한 무대에서 선보일 수 있었다는 점인데 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결국 참가자들의 역량 덕분이었다.
결승 1차전은 일단 프로듀서들이 내놓은 노래 자체가 압권이었다. 영케이의 ‘Fire’는 발랄한 소녀들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곡으로 데이식스 특유의 청춘 연가 같은 느낌이 묻어났다. 독보적인 음색을 가진 이수영의 보컬 콘트롤이 특히 돋보인 무대였다. 선우정아의 ‘Trend’는 디테일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선우정아의 디렉팅이 돋보였는데, 선우정아가 노래할 때 그러하듯이 거의 말하듯 노래하며 다소 엉뚱한 느낌까지 더해놓음으로써 귀여움의 정점을 찍었다. 다소 엉뚱한 소녀의 귀여움이 돋보이는 뽀송뽀송한 곡으로 특히 황세영의 세련된 가사 표현이 두드러졌다.
또 개코의 ‘Done’은 R&B 장르에 얹어진 랩 파트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곡으로 ‘나는 너의 뮤즈가 아냐 Dom’t use me’같은 가사나, ‘니가 어디에서 놀던 it all done’, ‘익스큐즈 미 Mr. 사라져 힙스터’ 같은 가사들이 시원시원한 랩의 묘미를 더해줬다. 랩에 특히 자신감을 보인 자칭 쿨걸 양이레가 돋보였지만, 함께 랩을 소화한 김규리 역시 밀리지 않는 랩 실력을 보여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영케이는 이들이 랩할 때의 애티튜드가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마지막 네 번째 무대를 만든 윤종신의 ‘오디션’은 오디션장에 나가는 이들의 마음을 딸이 엄마에게 하는 말로 풀어낸 가사를 가진 발라드곡으로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관객, 프로듀서 심지어 MC 장도연까지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잘하고 와 엄마 눈엔 날 여기로 보내는 마음이, 세상 속에 첫발을 딛는 내 딸의 집을 나서 점점 멀어지는 뒷모습. 내 차례야- 어릴 적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노래는...’ 처음 가이드로 곡을 접한 참가자들이 그 가사만으로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윤종신 특유의 감성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이 곡은 사실 참가자들이 감정적인 동요 없이 부르는 것 자체가 미션인 곡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감정을 눌러가며 무대를 끝낸 후 끝내 눈물을 흘리는 강윤정의 모습은 프로로서의 모습과 더불어 진짜 세상에 첫발을 내딛은 자의 진심과 간절함이 더해졌다. “간절함이 가장 소중했던 감정”이었다고 자신의 데뷔시절을 떠올리며 이 곡을 썼다는 윤종신은 간절함이 있는 다섯 명의 참가자가 기교 부리지 않고 오롯이 진심으로 스토리텔링을 해준 좋은 무대였다며 모두에게 똑같이 98점을 줬다.
끝내 프로듀서 점수와 청중평가단 점수까지 합산해 1위부터 10위까지가 결정됐다(10위 정유리, 9위 칸아미나, 8위 박서정, 7위 김규리, 6위 강윤정, 5위 조예인, 4위 이나영, 3위 양이레, 2위 황세영, 1위 이수영). 물론 이 순위는 다음 주에 생방송으로 치러지는 결승 2차전에 의해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최종 5인을 뽑는 결승의 주인공들은 누가 될지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미 톱10에 들어와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이토록 다양한 장르들을 별 어려움도 없이 잘 소화해내는 그 개성과 실력으로 저마다 이미 준비된 가수들이라는 걸 실감하게 만든다. 최근 들어 K팝 걸그룹의 가창력부터 퍼포먼스 같은 실력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만큼 K팝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저 기획사가 만들어내는 아이돌이 아닌 그 이상의 실력을 요구하게 된 것. 그래서일까. <걸스 온 파이어>라는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K팝 걸그룹의 가능성을 엿보게 만든다. 톱10에 있는 참가자들은 어떤 조합으로 어떤 장르를 갖고 와도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는 기량을 이미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주 최종 결승전을 통해 톱5가 누가 될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