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보고 있나? 나라가 못한 일을 Mnet이 해냈다(‘스테이지 파이터’)
‘스테이지 파이터’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클래식 무용수들의 경연 Mnet <스테이지 파이터>. 본격적인 공연이 펼쳐지는 7화와 8화를 계속 보고 또 보는 중인데 어떤 느낌인가 하면 김연아 선수 경기 장면을 보고 있으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지 않나. 딱 그런 느낌이다. 과장 아니냐고? 일단 한번 보시라. 안 보면 손해인 프로그램이다. 이런 건 나라가 나서서 해줘야 옳건만 나라도 할 생각을 못하고 우리나라 무용계도 못하고 지상파 방송도 못한 일을 Mnet이 해냈다. 워낙 클래식 무용에 대한 관심이 적은 터라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자 도전이다. <스테이지 파이터>를 기획하고 제작해준 Mnet에, 권영찬, 최정남 PD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장르가 다른 예순 네 명의 무용수가 경연을 벌여 8회가 방송된 현재 스무 명이 파이널에 진출했다. <댄싱 9>이 2013년이었는데 불과 10년 사이에 이토록 발전했다는 것이 놀랍다. 장르 가릴 것 없이 고르게 다 실력이 향상됐다. 사실 뚜껑이 열리기 전에는 현대무용이 압도적으로 주도하리라 예상했다. 대중 평가가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연인지라, 아무래도 대중에게 어필하기에는 현대무용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반 분위기는 그랬고. <스테이지 파이터>가 작품을 짤 일이 거의 없는 발레 무용수에게는 불리한 경연이지 않나. 그럼에도 파이널 진출자 20명 중에 현대무용이 8인, 발레와 한국무용에 각각 6인 씩, 발레의 약진이다. 그러나 가장 큰 수혜는 한국무용이 받은 셈이다. 한국무용이 이런 것이었어? 방송을 보다보면 절로 감탄하게 되니까. <댄싱 9> 때는 한국무용이 두드러지지 않아 아쉬웠는데 이처럼 한국무용의 진가를 알리게 되어 다행이다.
스무 명 중에 열두 명을 뽑아서 ‘STF 무용단’을 만든단다. 잘만 하면 공연을 보러 외국에서 팬들이 몰려올 수도 있지 않을까? 주변에 무용을 전공하는 남자 아이가 없어서, 남자 아이가 클래식 춤을 배우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경로로 무용을 하게 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듣자니 BTS ‘지민’의 춤을 보고 현대무용을 할 생각을 했다는 출연자가 여럿이란다. BTS가 이렇게 또 우리나라 문화에 기여를 하네 그려. ‘STF 무용단’의 향후 활동이 중요한 것이 ‘STF 무용단’을 보고 춤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저변을 넓힐 계기가 아닌가. 이럴 때는 나라가 나서서 보탬이 되어야 옳건만 문화체육관광부, 보고 있나?
시작부터 강조된 것이 피지컬이다. 볼쇼이 발레단의 경우 과거 어린 무용수를 뽑을 때 8대까지 집안 체격 조건을 봤다는 얘길 들었다. 아이가 어찌 성장할지 알 수 없으니 조부모의 체격 조건을 참조한다는 거다.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는 그만큼 체격이, 외모가 중요하다는 얘긴데 현재 1위를 달리는 김혜현. 키가 작은 편이고 역시나 키가 작아서 고민이라던 정혜성도 19위에 올랐다. 만약에 심사위원의 평가만으로 순위를 매겼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한때 Mnet 경연 프로그램이 갈등으로 화제몰이를 해서 악명이 높았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표현도 Mnet 경연 프로그램에서 나왔지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갈등 구도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마스터 김주원을 필두로 심사위원들의 자세부터가 다르다. 얼마나 잘하나 한번 보자, 이런 분위기가 아니지 않나. 다들 제자벌이고 무용계가 사제지간이라든지 선후배 관계가 엄격할 텐데 그럼에도 반말을 한다거나 ‘얘’, ‘쟤’, 이런 식으로 부르는 일이 없다. 아울러 리허설 디렉터 ‘매튜’의 발굴이 신의 한수다. 보는 눈이 예리하고 시야가 넓고 따뜻한 감성으로 도전자들을 바라본다. 음성은 또 왜 그리 좋은지. <댄싱 9> 참가자 최수진이 현대 무용 심사위원이고 이루다, 안남근이 안무가로 참여하는 등 <댄싱 9>의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한 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 마음을 정하기 쉽지 않아서다. 내심 응원하는 무용수는 발레의 강경호, 그리고 한국무용의 박준우. 한국무용에 성격 강해보이는 무용수가 많은지라 치여서 초반에 탈락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순둥순둥하고 춤 선 고운 박준우가 파이널까지 왔다. ‘STF 무용단’에서 볼 수 있을까?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