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과 탄핵 시국에 임지연의 리더십이 새삼스레 보이는 이유(‘옥씨부인전’)
‘옥씨부인전’에서 읽히는 이 시국 대중들의 정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도련님 저는... 진짜 제가 아닙니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옥태영(임지연)은 자신과 혼례를 청하는 성윤겸(추영우)에게 끝내 그렇게 말한다. 옥씨 가문의 딸 옥태영이 되어 대신 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는 사실 도망 노비 구덕이다. 그래서 자신이 제일 좋다는 청수현 현감의 아들 성윤겸의 고백을 듣고도 이를 거절한다. 자칫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면 자신은 물론이고 옥씨 가문 나아가 성씨 가문 또한 화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옥태영은 자신의 실체가 구덕이인지라, 성윤겸이 연모하게 된 이는 자신이 아니라 진짜 옥태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건 옥태영의 할머니 한씨부인(김미숙)의 말대로 틀린 말이다. 옥태영의 정체를 알고도 진짜 딸로 받아들인 한씨부인에게 옥태영이 “제가 아씨 대신 혼례까지 해도 되는 걸까요?”라고 묻자 한씨부인은 말한다. “대신이라니. 넌 누가 뭐래도 내 손녀 태영이야. 백이의 억울함을 풀어준 것도 너고, 막심이를 구한 것도 너다. 그로 인해 현감의 눈에 든 것도 다 네가 만들어 낸 인연인 거야.”
맞다. 옥태영은 그 일들을 스스로 한 것이었다. 죽은 진짜 옥태영 대신 그가 품었던 높은 꿈을 이루겠다고 마음 먹고 그 삶을 받아들였던 그였다. 옥태영이 된 구덕이는 그래서 과거 노비신분으로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했다. 노비들을 동무처럼 대하고 외지부가 되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던 백이(윤서아)의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쳤으며, 역시 죽을 위기에 처했던 백이의 어미 막심(김재화) 또한 구해냈다. 그 일련의 과정들에 성윤겸도 또 그의 아버지 성규진(성동일)도 옥태영을 마음에 두게 된 것이다.
옥태영은 자신이 그 일들을 한 것이지만, 자신이 진짜 옥태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건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이건 조선이라는 신분 사회 속에서 노비로 살아왔던 그 삶이 이 인물을 얼마나 옥죄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제는 정체를 숨기고 옥씨 가문의 딸로 살아가게 됐어도 노비 신분이었다는 굴레에서 스스로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그가 백이의 억울함을 풀어낼 수 있었던 건 그 역시 노비로 살아오면서 너무나 그 삶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태영은 백이 역시 백도광(김선빈)을 속으로 연모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러면서도 그걸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 신분의 차이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 노비의 삶을 이해하는 옥태영의 시선이 결국은 백도광 또한 마음을 바꾸게 만든다.
또한 옥태영의 이러한 낮은 시선은 청수현에서 유향소의 전횡으로 노비들이 억울한 처우를 받고 있는 상황 또한 바꾸어 놓는다. 같이 떠나자는 송서인(추영우)의 제안에 떠날 수 없다며 옥태영의 삶을 대신 살겠다고 결심했던 옥태영은 헤어진 후에야 자신 또한 송서인을 연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선택으로 청수현의 민초들의 삶이 나아지는 걸 보게 됐고, 그들의 진정한 존경어린 시선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옥씨부인전>의 옥태영이 지금의 시청자들 마음을 사로잡는 건 구덕이라는 노비로 살았던 그 처지가 현재의 자본화된 계급 속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마음에도 울림을 줬기 때문이다. 조선 사회의 노비의 처지나 돈도 없고 권력도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하는 현재의 우리네 처지나 다를 바 없게 느껴져서다. 그런데 그 구덕이가 옥태영이 되어 민초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고 그들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실체가 노비였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아닙니다”라고 부인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옥태영은 바로 자신이 맞다. 진짜 옥태영이 아니라, 구덕이가 대신 삶을 살게 되어 더더욱 낮은 자들의 처지를 알고 그래서 싸워나갈 수 있는 새로운 옥태영이 바로 그다. 구덕이도 송서인도 또 그 시대를 버텨내야 했던 백이나 막심 같은 낮은 자들도 그저 바란 건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신분이나 권력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그저 나로써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한 바람인가.
지금의 대중들이 원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그건 대단한 성공이나 성장 같은 것들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로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다. <옥씨부인전>의 울림이 큰 건 지금의 대중들이 자신들을 대변해달라며 뽑은 리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옥태영이라는 인물이 에둘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끼리 짬짜미 해서 권력을 휘두르려는 유향소 같은 이들과 맞서, 진짜 민초들이 무얼 원하고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는가를 들여다보고 그걸 대변하며 싸우는 그런 리더. 비상계엄과 탄핵시국에 <옥씨부인전>이 보여주는 리더십이 새삼스럽게 보이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