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자들의 비밀 드러난 ‘조명가게’, 강풀식 반전이 만들어낸 폭풍감동

‘조명가게’, 강풀이어서 가능한 이미지 서사의 힘

2024-12-12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어디선가 자꾸만 들려오는 ‘슥’ 하는 소리.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듣는 이들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 소리를 내는 주인공은 바로 지영(김설현)이다. 손톱이 손가락 안쪽으로 붙어 있고 그 손톱으로 벤치를 톡톡 치는 소리를 내던 낯선 인물. 늘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고,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여자다. 누가 봐도 귀신 같고 유령 같은 공포를 자아내게 만드는 이 존재는 왜 이런 행동들을 하는 걸까.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조명가게>는 지영 같은 낯선 자들이 배회하는 낯선 동네에 유일하게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조명가게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으로 전반부를 채워넣었다. 선해(김민하)는 낡은데다 잠긴 방에서 불빛이 흘러나오는 이상한 집에 이사 왔다가 그 집에 갇혀버린 인물이고, 지웅(김기해)은 어두운 골목길이 무서워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흥얼대며 그 길을 매번 지나다가 그 골목길에 갇혀버리는 인물이다. 또 매일 조명가게를 찾아와 엄마가 시킨 전구를 사가는 현주(신은수)도 있다.

이렇게 낯선 이들과 낯선 동네의 전말이 밝혀진 건 4회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다. 알고보면 모두가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환자들이다. 사고로 의식을 잃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경을 헤매는 인물들. 조명가게가 있는 그 낯선 동네는 이들의 무의식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제 이들이 왜 그런 낯선 행동들을 했는가가 밝혀진다.

버스 사고였다. 브레이크 고장으로 버스는 다리 위에서 가드레일을 치고 강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안에 타고 있던 이들 중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조명가게>는 의식을 잃은 채 중환자실에 살아남은 자들이 어떻게 의식이 없는데도 남다른 의지로 버텨내고 있는가를 따라간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 그들을 살게 만드는 사랑하는 이들의 의지가 보인다.

지영이 반복해서 낸 ‘슥’하는 소리는 알고보면 사고로 망가져 버린 사랑하는 연인 현민(엄태구)을 바느질하는 소리다. 또 지영이 반복해서 벤치를 톡톡 쳤던 건, 농아인 그녀가 현민에게 커다란 북을 통해 사랑의 마음을 전했던 방식이었다. 현민이 그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 나서도 버텨내게 한 힘은 다름 아닌 지영 때문이었다.

이 장면을 <조명가게>는 마치 웹툰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이미지로 담아낸다. 지영이 슥하며 바느질을 할 때마다 그 손을 들어올리는 이미지는 현민의 심전도계의 심박 신호와 겹쳐진다. 그 이미지는 이 상황에 대한 그 어떤 말로 하는 설명보다 강렬하고 절박하게 지영의 의지가 끝까지 생명줄을 놓지 않게 만드는 현민의 무의식을 보여준다.

선해는 그 낯선 집에 잠겨 있는 방문의 불빛이 처음에는 공포였지만,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 꺼졌다 켜졌다 하는 불빛을 보며 자신이 사랑했던 언니 혜원(김선화)을 떠올린다. 사고 직전 크게 다퉜지만 사고가 나는 순간에 자신을 뒤에서 꼭 안음으로써 그녀를 살렸던 혜원이었다. 선해에게 꺼졌던 켜졌다 하는 방의 불빛은 이제 마치 혜원이 보내는 신호처럼 보인다.

현주가 매일 찾아가는 조명가게도 이제와 돌아보면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낸 서사의 산물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건 무의식이라는 어두운 골목길을 밝히는 유일한 곳으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이들을 상징하는 이미지다. 환하게 켜있는 전구가 여전히 누군가의 의지로 삶을 놓지 않는 이들이라면, 깜박이다 결국 꺼지는 전구는 그 의지를 드디어 놓고 떠나는 망자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런 독특한 서사가 가능한 건 아무래도 웹툰을 그려온 강풀 작가여서가 아닐까 싶다. 마치 이미지로 그려내는 스토리랄까. 글이 아닌 그림으로 떠올리는 상상들이 엮어져 만들어내는 독특한 이미지 서사의 세계가 <조명가게>에는 도드라진다. 그래서 이 독특한 세계를 들여다보면 오싹했던 공포의 이미지들이 그 이면을 따라가면서 절절한 사랑의 이미지로 변모하는 걸 경험하게 된다. 공포가 감동으로 바뀌는 그 반전의 이미지들은 어둠 속에 더 환하게 빛나는 조명처럼 절망의 끝에서 어떤 희망 같은 것들을 찾아내게 해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디즈니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