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씨부인전’도 ‘정년이’처럼 아예 성소수자를 삭제했으면 어땠을까

잘나가다 급브레이크 걸린 ‘옥씨부인전’, 빠른 전개도 좋지만 고민 필요했다

2024-12-20     정석희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 4회에 남자 주인공이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면서 잘나가던 드라마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일부 반응이다. 남자 주인공이 1인 2역이다. 두 남자 중 성윤겸(천승우)이 성소수자였는데 그가 떠난 자리를 또 다른 남자 천승휘가 메우는 모양이다.

그런데 성소수자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애초에 제작진이 조선시대 문인 백사 이항복의 <유연전>을 재해석했다고 밝히지 않았나. 일종의 다큐멘터리인 ‘유연전’에 의하면 ‘유유’와 ‘유연’ 두 형제가 있었는데 유유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유연이 형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유유는 버젓이 살아있었다. 이 과정에 유유의 아내 백 씨가 유유라고 주장하는 다른 남성과 부부가 되어 살았으나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법도가 지엄했던 시절이거늘 엄연히 남편이 있는 여성이 다른 남성과 부부를 자처하며 살았건만 왜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유연전’ 안에서 이항복 선생이 명확히 밝힌 것은 아니나 유유가 소수자였기에 백 씨를 처벌하기 애매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유는 혼인한 후 한참이 되도록 아이를 얻지 못해 아버지로부터 타박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아이를 낳지 못하면 며느리 탓을 하기 마련인데 유유의 아버지는 아들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 원인이 아들에게 있다고 본 것. 아버지는 아들을 크게 다그쳤고 결국엔 유유가 집을 떠나는데 <옥씨부인전>에서 성윤겸이 아버지(성동일)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집을 떠나는 대목과 일치한다.

따라서 진짜와 가짜가 서로 진짜 주인임을 다투는 진가쟁주담(眞假爭主談) 못지않게 빼놓을 수 없는 소재였던 것. 다만 성윤겸이 소수자 아이들의 집단 애심단의 단주라는 전개는 매끄럽지 않았다. 그 시절에 그 많은 소수자 아이들을 모은다는 게 가능했을까? 게다가 굳이 어깨에 낙인까지 찍어가며 아이들에게 무예를 가르칠 필요가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역모로 오해를 받을 수 있던 시절이지 않나.

웹툰 <정년이>가 원작인 드라마 tvN <정년이>에는 원작의 주요 인물인 ‘부용’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주요 캐릭터를 삭제했을 뿐만 아니라 극중 정년(김태리)이와 미묘한 기류가 오갔던 주란(우다비)이를 결혼을 시켜 버리는 바람에 웹툰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아마 <옥씨부인전>도 <유연전>의 성소수자 부분을 지울 것인가 살릴 것인가 논의가 꽤 있었지 싶다. 퀴어 코드를 모든 연령층이 다 보는 TV 드라마에서 다룬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되짚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를 처음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1999년 KBS 송년특집 2부작 <슬픈 유혹>이었다. 김갑수, 주진모가 그리는 낯선 사랑이 충격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성소수자를 다룬 드라마는 SBS <인생은 아름다워>다. 2010년 3월부터 11월까지 방송된 63부작 김수현 작가 작품이었는데 16회에는 급기야 송창의(태섭), 이상우(경수)의 키스신이 펼쳐지기도 했다. 김수현 작가여서 가능한 일이지 싶다.

만약에 신인 작가라면 방송사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당시 이 드라마로 인해 많은 이들이 평소 염두에 두지 않았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석에서도 이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한 친구에게 ‘나는 살면서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라고 했더니 친구가 배시시 웃으면서 ‘네가 믿음이 안 가나 보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띵했다. 그럴 수 있겠구나. 내가 이해 못할 사람으로 보여서 아무도 말을 안 했을 수도 있겠구나.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나는 조금 더 개화가 되긴 했다. 이해에 도움이 된 영화 한 편을 소개하자면 김희애가 주인공인 2019년 작 <윤희에게>. 스포일러이니 자세한 얘기는 할 수 없는데 마지막 대사 ‘나도 네 꿈을 꿔’,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옥씨부인전>의 인기 비결은 속전속결 빠른 전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요즘 시청자는 늘어지는 전개를 못 견뎌 하지 않나. 숏폼 드라마가 인기고 드라마도 요약된 짧은 영상으로 보는 세상이니까. 빠른 전개를 위해 어지간한 설명은 생략이 필요했으리란 걸 감안하더라도, 성소수자가 꼭 들어가야 할 소재였다 하더라도 매끄럽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구덕이(임지연)가 옥태영의 삶을 살게 된 과정은 누구라도 납득이 되는 전개였으나 성윤겸의 성소수자로서의 행보는 어색하지 않았나. 다루기 어려운 소재인 만큼 좀 더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