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19금 춘화보다 장률의 연애 서사가 더 눈길 끄는 ‘춘화연애담’

‘원경’에 이어 ‘춘화연애담’, 19금 사극에 스토리가 보인다는 건

2025-02-11     정덕현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내가 공주가 아니었어도 그대는 나의 부마가 되고자 했을까?” 동방국 왕실의 공주 화리(고아라)가 묻는다. 화리는 공주로서 부마 간택을 받아야 되는 입장이지만, 그걸 스스로 하고 싶어한다. 이른바 ‘자만추(자유로운 만남 추구)’를 원하지만, 공주라는 위치는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가 좋아했던 채준(성준)은 입양된 인물이긴 하지만 사촌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그녀를 떠난다. 게다가 유력한 가문의 자제들은 모두 화리를 부담스러워한다. 공주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인물이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그렇다.

이 상황만 봐도 티빙 드라마 <춘화연애담>이 가진 허구적 색깔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들이 사는 공간이나 이들의 문화가 조선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를 ‘동방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로 상정한다. 그건 첫 장면이 사극의 배경이 아닌 현대극으로 시작되고 백조서점이라는 중고서점에서 일하는 봄이(고아라)가 우연히 ‘춘화연애담’이라는 책을 보게 되는 것으로 문을 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 동방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바로 그 ‘춘화연애담’이라는 책 속 내용으로 그려진다. 역사와는 거리가 먼 사극의 배경을 가진 연애소설인 셈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화리 공주가 주창하는 ‘자만추’에서 비롯된다. 사극은 아니지만 그 문화적 배경을 슬쩍 가져온 이 가상연애극은 ‘자만추’가 불가했던 그 금기를 깨는 화리를 내세워 진정한 사랑의 이야기를 그리려 한다. 공주니 부마니 하는 말이 너무 고전적(?)인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그 가상을 빗대 현대에도 어울릴 법한 사랑 이야기를 말이다. 조선의 계급사회에서 현대의 자본화된 세상으로 바뀌었지만 그 계급이 돈이나 스펙 같은 조건으로 바뀌었을 뿐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재의 사랑이나 결혼 이야기를 사극에 빗대 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화리가 자신이 공주가 아니었어도 자신의 부마가 되고자 하겠냐고 최환(장률)에게 묻는 장면은 여러모로 돈과 스펙 같은 외적 조건들이 사랑과 결혼의 전제가 되는 현재를 연결한다. 그런데 여기서 동방국 최대 거상의 외동아들 최환의 답이 의외다. 그는 오히려 화리가 공주여서 좋다며 그런 조건 때문에 휘둘리는 사내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걸 드러낸다. “그 정도 뿐이었던 마음인 겁니다. 공주라 물러난 이의 비겁한 마음도 공주마마의 부마되길 부담스러워하는 자들의 마음도 그저 그 정도밖에 안되는 마음이예요. 나는 마마께서 공주시라 좋고 어여뻐서 좋고 그리고 그 신분이 나를 더욱더 고귀하게 만들어줄 것이니 좋은데?”

언뜻 속물처럼 보이지만, 최환의 답은 공주의 조건이 좋다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그건 공주건 아니건 있는 그대로의 화리를 좋아한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계급이나 돈 같은 외적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공주라는 사실이 갖는 그 부담감까지도 다 포함해 그녀가 좋다는 것. 자신이 공주이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계속 꺼내놓는 화리의 밀어냄에도 최환은 흔들리지 않고 그것마저 넉넉히 끌어안는 포용을 보여준다. 화리의 마음이 금세 최환에게 이끌리게 되는 이유이고, 시청자들이 단 몇 회만에 이 최환이라는 인물에 빠져드는 이유다.

<춘화연애담>은 물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19금을 표방한 가상 사극이다. 그래서 등장부터 과감한 춘화들이 펼쳐진다. 사극과 19금의 만남은 분명 파격이지만 최근 들어 <원경> 같은 작품이 그러했듯이 점점 OTT를 통해 익숙해지고 있다. OTT라는 플랫폼의 특성상 19금으로 확장된 소재와 표현수위를 가진 작품들은 이제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19금 하면 그저 야하기만한 작품들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최근 이른바 ‘19금 사극’들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 있다. 그건 19금의 표현 수위가 곳곳에 담겨 있긴 하지만 과거 한때 그저 노출과 자극만으로 가득 채워졌던 19금 콘텐츠와 달리 스토리가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원경>이 조선 초기 세종의 어머니이자 태종의 아내였던 원경왕후의 치열했지만 힘겨웠던 삶을 재조명하는 심리극이 돋보이는 스토리가 주목을 끄는 것처럼, <춘화연애담>에서는 19금 춘화의 수위보다 최환이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통해 그려지는 자못 현대적인 느낌의 연애담이 주목을 끈다.

이 작품들을 보면 ‘19금’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걸 실감하게 된다. 과거 ‘야한 작품’으로 여겨지던 19금의 의미 대신, 이제 19세 이상이 볼 수 있는 콘텐츠의 소재와 수위를 표현하는 의미가 되어간다고나 할까. 물론 이에 편승하는 퇴행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19금을 마치 ‘금기된’ 어떤 것으로 여기는 선입견은 이제 깨져나가고 있다. 이른바 ‘19금 사극’에서 먼저 스토리가 주목된다는 건 그런 의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티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