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도 많이 먹은 9년차 예능 ‘미우새’가 모처럼 발휘한 선한 영향력

피싱 사기 다룬 ‘미운 우리 새끼’ 통해 본 지상파 예능의 살 길

2025-02-14     정석희 칼럼니스트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가 2016년 여름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햇수로 9년이다. 처음에는 연예인의 어머니가 아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모처럼 모자 관계에 주목하는 기획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어머니들은 ‘맛있겠다, 좋겠다’ 추임새나 넣는 구경꾼에 불과할 뿐 멤버들끼리 어울려 노는 모습을 주로 보여줘 아쉬웠다.

다행스럽게도 <미운 우리 새끼>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주 429회 ‘피싱 사기’ 관련 꼭지. 이상민, 배정남, 김종민 송해나가 각자 피싱 사기 당한 사례를 털어놓았는데 사실상 피싱 사기를 누가 가장 많이 당할까? 아마도 어르신들이 아닐까? 202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피싱 사기 피해액이 700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어르신들이 피눈물을 흘리셨을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방송에 피싱 전문가 충남 경찰청 피싱 전담팀 안정엽 형사 직접 나왔다. 경찰들끼리 하는 말로 요즘을 ‘대사기의 시대’라고 한다나. 그의 설명에 따르면 첨부된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고. 악성 코드를 심어 우리 휴대폰을 완전히 장악해 주소록을 비롯한 개인정보를 몽땅 가져가는 건 물론이고 문자나 카톡도 다 볼 수 있다고. 심지어 112로 전화를 하면 그걸 범인이 당겨서 직접 받는다나. 가장 무서운 건 AI를 이용해서 목소리를 복제한다는 사실. 실험으로 배정남, 이상민의 목소리 따라하게 했는데 감쪽같이 속을 만했다.

‘엄마 나야, 휴대폰이 고장 났으니 여기로 돈 보내’, 이런 문자 하나에 망설임 없이 링크를 클릭해 돈을 보내는데 아들이나 딸 목소리로 연락이 오면, 급하다고 하면 주저 않고 보내시지 않겠나. 너무나 무서운 세상이다.

지상파 방송이 OTT며 SNS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은 공익성이 아닐까? 시청률에서 예능 프로그램 종합 1위를 달리는,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파급력 있는 <미운 우리 새끼>가 시청자를 위해 피싱 사기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줘서 반가웠다. 그릇이 크다고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릇이 바로 놓여 있어야 많은 물을 담을 수 있다. 시청률 1위의 <미운 우리 새끼>가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이번 행보를 시작으로 고민했으면 한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SBS]